배영수 기자
(뉴스통신=배영수 기자) 인천시가 활성화를 명목으로 강행하는 인천아트플랫폼의 레지던시(전문 예술가들이 지역에 정착하거나 활동할 수 있도록 공간 지원을 해 주는 제도) 폐지 논란과 관련 예술계 및 지역사회 차원에서 일어난 반발이 점점 ‘지역갈등’으로 비화되는 형국이다.
최근 아트플랫폼 주변의 주민단체가 인천시 편에 서서 성명서를 내고 인천시의회 내에서도 여당 소속의 시의원들이 이에 가세하더니 최근엔 일부 지역언론까지 유 시장의 편에 서는듯한 모습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관련 보도들 기사 하단 링크 참조).
23일 지역 예술계에 따르면 민주당 소속 지역 국회의원 네 명이 레지던시 폐지에 반대하는 성명을 냈고 같은 날 한 지역언론에서는 이 같은 레지던시 제도가 지역 예술계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모르겠다는 식의 보도가 나오는 등 점점 지역갈등으로 번지는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앞서 22일에는 민주당 소속의 국회의원 4명(김교흥·유동수·박찬대·허종식)이 인천시의 아트플랫폼 레지던시 기능 폐지 등을 포함하는 운영개편(안)에 반대하는 뜻이 담긴 공동성명서를 낸 바 있다.
이들 의원은 “인천시의 인천아트플랫폼 운영개편(안)은 소통 부재 및 일방통행 논란을 자초하는 행위로, 일각에서는 현 유정복 시장의 핵심 공약인 ‘제물포 르네상스’ 때문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표명하고 있는데 자신의 공약 때문에 예술가들의 창작 공간을 해체하고 파괴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문화예술의 보편적 정책기조는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가 마땅하지만 인천시는 이를 폐기하겠다는 것으로 보이는 만큼 유 시장이 지역 및 국내외 예술인들과 예술지망생들에게 답하라”며 “우리는 예술가들의 창작 공간 해체·파괴를 반대한다”고 부연했다.
사실 인천시가 아트플랫폼 레지던시를 강제로 조정하려는 행정은 여러 면에서 모순이 있는 상태다.
추가 취재를 통해 확인된 바로는 인천시가 한때 아트플랫폼에 ‘스타벅스’를 입점하려는 시도를 한 적이 있었는데 이를 전해들은 시민들 대다수가 스타벅스 입점이 ‘활성화의 방점’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어리둥절해 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레지던시 폐지 논란이 불거지자 인천시는 “지역 작가들 중심으로 레지던시를 바꾸겠다”고 발표했는데 지역 작가들 대부분이 예술계에서조차 생소한 경우가 다반사임을 상기해 보면 ‘활성화 명목’이라면서 ‘지역 작가들’로 레지던시를 꾸미겠다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평가가 많았다.
그런데 같은 날 한 지역언론은 아트플랫폼에 대해 “입주작가들 수억 원 지원하고 끝”이라는 식의 제목이 담긴 기사를 내며 이 논란에 가세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이 기사는 ‘입주지원을 받고 들어온 작가들이 지역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알 수가 없다’는 내용으로 점철돼 있다.
여기에 올해 인천시가 약 3억 원 가량의 예산을 레지던시에 지원한 내용을 두고 “이렇게 ‘시민 혈세’로 지원을 받는 작가들이 레지던시 경력을 국제무대에서도 인정받고 있지만 이를 육성한 지역에 어떻게 환원되고 있는지 연구조차 없다”는 내용도 함께 보도했다.
해당 매체는 19일에도 인천아트플랫폼이 레지던시를 포함해 ‘시각예술분야에 쏠려 있다’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하며 인천문화재단의 전·현직 대표이사가 화가 출신이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니냐는 식의 의혹을 보도하는 등 사실상 레지던시에 대해 '불필요'를 강조하려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는 모습이다.
예술계는 이 같은 보도에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다. 입주작가들의 지원사업에 예산이 들어가기는 하겠지만 그것을 작가들에게 지원하고 끝이라는 식의 보도는 선을 넘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작가들의 지원은 대체로 ‘공간지원’이 주된 내용이고 전기·수도 등 시설의 사용은 자부담으로 하며 주기적으로 전시회나 오픈스튜디오 등 ‘대시민 예술서비스 제공’ 목적의 퍼포먼스들도 작가들이 하고 있는 마당에 “작가들이 지원만 받고 지역에 환원하는 것이 없다”는 식의 보도는 심히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또 레지던시 제도를 거쳤거나 활동하는 작가들 중 일부는 인천 출신 혹은 인천 기반의 활동을 꾸준히 해온 경우도 있는데 이들의 의견 역시 레지던시 작가들이 지원만 받고 떠나는 식으로 활동하는 건 아님을 공식성명이나 익명 인터뷰 등을 통해 밝혀오고 있다.
여기에 2016년 경부터 인천시 안팎과 예술계 등지에서 과거 섬 지역으로 레지던시를 확대하자는 방안에 대해 여러 의견들이 있었던 것도, 섬 레지던시의 찬반 여부를 떠나 아트플랫폼의 레지던시가 모티브가 됐다는 것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사례이기도 했다.
더불어 현재 중구청의 홈페이지에서도 다운로드 가능한 ‘개항장 문화지구’의 도면파일만 보더라도 아트플랫폼 주변으로 소재해 있는 수십 개의 민간 갤러리와 복합문화공간들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들 공간들은 아트플랫폼 조성 전에는 없던 공간들이었다.
해당 보도대로 연구 자체는 좀 부족했을지는 몰라도, 아트플랫폼이 레지던시 제도 등 여러 활동들을 통해 가시적인 변화들이 점진적으로 일어났다는 것은 ‘팩트’에 해당되는 부분인 만큼 해당 보도가 적절하지 못했다는 지적은 충분히 나올 수 있다.
또 과거 시 산하 기관 관계자들이 인천아트플랫폼의 레지던시 제도가 주변 영향뿐만 아니라 해당 공간에서 역사성과 지역성을 자연스럽게 발휘할 수 있다는 의견들도 그간 많이 나왔었다.
단적으로 8일 인천문화재단 행정사무감사에 출석한 이종구 재단 대표이사는 “(레지던시 제도를 통해) 14년 동안 축적돼온 가치와 지역성에 주목해야 한다”며 “개항로 일대는 좋은 작가들이 인천에 와서 상상력을 펼치고 활동하며 프로젝트를 할 수 있는 곳으로 평가받았는데 그건 지역성이 결정적인 원인이지, 물리적인 공간 때문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지역성이라는 것이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는 다소 애매한 부분이 있고 여기에 ‘행감’이라는 자리가 “거짓을 말했다”고 판단됐을 경우 처벌까지 받을 수 있음에도 이 대표이사가 그렇게 강조한 것은 ‘예술인 출신’으로서 체감됐던 바를 ‘처벌까지 각오’하고 얘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매체가 19일 보도한 ‘시각예술 쏠림’이라는 보도내용 역시 예술계와 작가들의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인천아트플랫폼이 2009년 중구미술공간, 일명 ‘예촌’으로 만들어지며 초기에 미술창작공간이라는 정체성의 영향이 아직 있긴 했지만 그것을 ‘쏠렸다’는 식의 자극적인 표현을 더해 보도까지 한 것은 ‘선’을 넘은 게 아니냐는 의견이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한 음악가는 “레지던시 작가들 중 화가 쪽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그건 전시 등에 특화된 아트플랫폼 공간으로서는 어쩌면 당연했던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음악가는 “예를 들어 인천예술회관에 상주하는 시립예술단은 음악과 공연분야가 주력인데 지역사회 그 누구도 시립예술단에 ‘장르가 한 쪽으로 쏠렸다’고 평가하지는 않지 않느냐”며 “각자의 장르에 맞는 공간들은 존재하기 마련이고 또 그런 것들이 지역성을 갖게 되는 것”이라는 의견을 전해왔다.
익명을 요구한 한 화가 역시 “아트플랫폼의 예술장르에 대해 편중현상이 있다는 지적은 물론 있긴 했었는데 그것이 지역사회 차원에서 수용이 됐던 걸로 안다”며 “그래서 다른 영역의 예술가들도 레지던시 활동을 한 사례들이 있고 향후 지적이나 의견이 있으면 더 넓혀가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 매체의 최근 레지던시 관련 보도에 대해 최근 유 시장의 측근인 언론인 출신 인사인 A씨가 대표이사로 부임한 것이 발단이 됐다는 의견도 보이고 있는 만큼 논란은 한층 가중되는 양상이다.
한편 인천시의회에서는 레지던시 폐지 논란이 이미 ‘정쟁화’가 돼가는 모양새다. 8일 인천문화재단의 행감 당시 이를 반대해 왔던 유경희(부평2), 장성숙(비례) 등 더불어민주당 소속 시의원들은 레지던시의 존치 이유를 명확하게 밝히기도 했다.
당시 이들 시의원들은 “본디 쓰지않던 공간을 레지던시를 계기로 오픈하고 전국적으로도 알려지기도 했고 실제 그 일대에 근대문화와 관련된 갤러리나 상점 등도 많이 생기고 있다”며 “비록 빠르지는 않지만 문화예술의 인프라가 깊어져가고 있다는 인증”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당시 행감에서는 재단이 레지던시 폐지 여부에 대한 권한이 없었다는 점 때문이었는지 국민의힘 소속 시의원들은 폐지안에 찬성하는 듯한 의견을 보이지는 않으며 당시 행감 때까지만 해도 시의회 내에서는 레지던시 폐지에 찬성하지 않는 듯한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15일 이에 대한 직접권한을 가진 부서인 시 문화체육관광국의 행감 때 국민의힘 소속 박판순 의원(비례)은 “내 집이 그 근처인데 아트플랫폼 주변은 항상 어둡고 깜깜했다”며 “일반 시민들은 열린 공간에서의 문화향유 접근성을 잘 체감하지 못한 것 같다”고 언급했다.
이어 “‘플랫폼’이라고 표현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이용한다는 전제가 있는 만큼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역할이 됐는지를 면밀히 검토하고 활성화와 지역경제, 시민참여 등에 주안점을 두라”고 주장했다.
당시 박 의원의 발언은 인천시의 레지던시 폐지안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우회적으로 밝힌 차원을 넘어 “레지던시 활동을 하는 예술인들로 인해 주변 활성화가 되지 않는다”는 식으로도 해석될 수도 있어 꽤나 논란이 있었다.
반면 유경희·장성숙 등 민주당 시의원들은 15일 행감 당시에도 레지던시의 존치 필요성을 주장했는데 이에 대해 김충진 시 문화체육관광국장은 이들 의견에 대해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원하시는 것 같다”며 시의 계획은 이미 확정돼 있다는 뉘앙스의 발언을 이어가 별도로 논란이 되기도 했다.
행감 종료 후 유 의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예술인들은 본인들이 속해있던 아니던 레지던시 존치에 대한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시의원으로서) 이를 지키고자 했지만 사실 지켜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이른바 ‘힘든 싸움’을 하고 있음을 토로하기도 했다.
한편 인천지역의 한 시민단체 소속 활동가는 “레지던시 폐지 논란 전에 문화계에서 이를 인지하고 시민단체 몇몇에 함께 목소리를 내주길 원했던 걸로 아는데 그렇게 될 경우 자칫 ‘정쟁화’의 우려가 있기 때문에 먼저 해당 작가들을 비롯한 예술인들이 모여 목소리를 내 보고 추이를 지켜보는 의견이 있었다”고 전했다.
이어 “당시 시민사회진영에서는 이 문제가 ‘정쟁’으로 비화되면 풀기 어려워진다는 진단이 있었기 때문에 예술인들에게 여야를 막론하고 최대한 많은 시의원들과 만나보라는 의견을 주기도 했는데 정작 시의회 내에서 민주당 소속 의원들만 공감을 해준 것으로 보이고 그러다 보니 정책에 대한 찬반 진영으로 정쟁화된 것 같은데 상당히 안타까운 부분”이라고 의견을 내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