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GM 부평공장 전경 (사진=한국GM)

 

(뉴스통신=배영수 기자) 한국GM 사내에 파견된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로 ‘비정규직’의 설움을 받아온 노동자(편의상 ‘노동자 측’으로 표기)들이 자신을 한국GM 노동자로 인정해달라며 원청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최종 승소했다. 

이들의 최초 소송이 2005년에 시작된 점을 감안하면 회사 측의 비정규직 차별에 대한 투쟁에 나선 지 19년 만에 불법파견을 인정받은 것이지만 2차 하청업체 소속으로 파견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불벌파견은 인정되지 않았다.

25일 대법원 3부(주심 엄상필 대법관)는 한국GM 부평·창원·군산공장 내 1,2차 사내하청업체 비정규직 총 128명이 원청을 상대로 제기한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인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 역시 원고들이 업무에서 한국GM으로부터 실질적인 지휘 및 명령을 받는 파견 관계에 있었던 만큼 한국GM이 실질적인 사용자로 본 것이다.

노동자 측의 이번 소송은 이 건에 대한 소송 자체는 2015년이 시작이지만, 한국GM 창원공장 노조가 2005년 1월 고용노동부에 불법파견 진정을 내며 본격 시작된 만큼 그 시작이 지금으로부터 19년 전인 2005년 초라고 할 수 있다.

2005년 당시 고용노동부는 해당 진정 내용을 파악한 뒤 창원공장 비정규직 843명 전원에 대해 불법파견이라고 인정하고 파견법 위반 혐의로 한국GM 사장과 하청업체 대표를 고소해 지난 2013년 대법원에서 ‘벌금형’ 처분을 받은 바 있었다.

이 판결에 의거해 한국GM에는 사내 투입된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해 ‘직접고용의무’가 발생했지만 사측은 이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으며 꾸물대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이에 금속노조 한국GM 비정규직지회 조합원 106명과 비조합원 22명 등 총 128명이 2015년부터 원청을 상대로 세 차례에 나눠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제기했던 것으로 이 건으로만 한정한다 쳐도 10년을 싸워온 셈.

사실 10년의 기간 동안 해당 사안이 대법원까지 간 것은 결정적으로 한국GM 사측이 과거 판결과 노동자들의 요구를 외면해온 탓이다. 이미 지난 1심과 2심 역시 노동자 측의 ‘일부 승소’로 판결이 났으나 사측이 지속 항소해 결국 대법원까지 사안을 끌고 간 셈이기 때문.

재판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사실상 원청인 한국GM의 지휘를 받으며 작업한 점을 들어 한국GM의 노동자로 봐야 한다고 봤다. 

재판부는 “피고는 사내하청업체가 담당하는 공정이나 작업위치를 (한국GM이) 결정했고 자동차 생산 계획에 맞춰 생산량, 시간당 생산 대수, 작업 일정 등 역시 결정함으로써 원고들의 작업량, 작업순서, 작업속도, 작업시간 등을 사실상 결정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이어 “원고들이 사내 하청업체에 고용된 후로도 사측의 지휘와 명령을 받으며 자동차 생산 업무에 종사했으므로 파견법이 정한 파견 근로자에 해당되는 것”이라고 최종 판결한 것이다.

대법원은 직접 혹은 간접 생산공정에 대해 모두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그간 원청이 “원고가 수행한 간접 생산공정은 직접 생산공정과 작업 내용이 다르기 때문에 공동작업이 아니다”라고 주장했지만 재판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재판부는 “각 공정을 다른 공정과 완벽히 구분된 개별 공정으로 평가하기 어렵다”며 “사내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은 피고 소속 노동자들과 하나의 작업집단으로 구성돼 피고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된 것”고 판시했다.

다만 재판부는 일부 2차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해서는 파견 관계가 인정되기 힘들다고 봤다. 피고가 직접적인 작업 배치 및 결정 권한을 행사했다고 볼 결정적인 증거가 없고 2차 협력업체가 하도급받은 공정 업무는 원청의 업무와 구분돼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해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이번 판결로 인해 한국GM 비정규직 노동자 일부는 해당 소송으로 투쟁을 시작한 지 19년여 만에 복직 가능성이 열렸다. 다만 2차 하청업체 노동자의 파견관계가 인정되지 않은 판결로 인해 이에 해당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아쉬울 수밖에 없기는 하다.

금속노조는 이날 성명을 내고 “불법파견을 숨기기 위해 하청 아래 하청의 다단계 구조 속에 중간착취의 피해는 더 커진 것인데 2차 하청 노동자들이 불법파견을 인정받지 못했다는 건 법원이 이를 바로 보지 못한 것”이라며 “노조는 이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고 일갈했다.

금속노조는 “대법원이 배제한 노동자와 함께 끝까지 차별 철폐를 외치고 이들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 투쟁하겠다”며 “한국GM이 조직적 기업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시인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또 윤석열 정부에 대해서는 “대부분 인정된 불법파견 대법원 선고를 수용하고 즉각 노조법 2·3조 개정에 나서야 한다”며 “다시금 노조법 개정안에 대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그때는 금속노조가 이제껏 보지 못한 수위의 투쟁으로 맞설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금속노조 한국GM 부평비정규직지회 측 관계자는 대법원 판결 이후 “생산 공정 과정에서의 파견이 모두 불법인데 이제 와서 1,2차 하청을 구분한다는 판결은 좀 이해가 가지 않았다”며 “사실 가장 낮은 곳에서 힘들게 일한 노동자들인데 사법당국이 이를 배제하는 건 아닌지 의문”이라고 안타까워했다.

한편 정의당 인천시당(이하 ‘시당’으로 표기)은 이날 대법원 판결 직후 성명을 내고 “2차 하청 노동자에 대한 판결은 문제”라고 밝히면서 “한국GM 사측이 법원 판결에 대한 후속 조치를 실행하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전면 추진하라”고 촉구했다.

시당은 이번 판결과 관련해 “노동자 측이 원청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판결을 확정했지만 2차 하청업체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제외하는 아쉬운 판단이 이뤄졌다”고 논평하고 “그나마 이번 승소 판결이 인천을 넘어 전국의 비정규직 문제 해결 측면에서는 의미가 크다고 본다”고 밝혔다.

시당은 대법원 판결의 의미에 대해 “하청이더라도 노동자들이 제공한 노동에 대해 한국GM을 실질적 사용자로 봐야 한다고 판단은 국내 자동차 산업에서 계속 문제 제기된 불법파견을 인정하고 원청의 책임성을 분명히 한 것이며 오랜 법적 소송에 종지부를 찍었다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크다”고 봤다.

이어 “한국GM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시작된 지 19년 만에, 그리고 해당 소송이 10년 만에 불법파견 인정을 받았으나 기나긴 과정에서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생계로 떠나야 했고 뇌경색으로 쓰러져 투병생활 중인 노동자도 나왔을 정도로 노동자들의 고통이 길었다”며 안타까워했다.

시당은 불법파견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이뤄진 만큼 한국GM 사측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추진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한국GM의 비정규직 문제가 그간 고용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에서부터 검찰 수사, 그리고 대법원 판결까지, 그리고 민형사 연관 소송에서 거의 일관되게 불법파견이 유죄로 인정되고 있는 점이나 카허 카젬 전 사장은 이미 불법파견이 인정돼 1심 실형(징역 8개월 집행유예)을 받은 바 있는데 이렇게 사측 임원들이 계속 검찰의 조사를 받고 법정에 서는 악순환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사측이 결단을 해야 한다는 것이 시당의 입장이다.

김응호 시당 부평구위원장은 “이번 판결의 법적 및 사회적 의미와 오랜 재판 과정의 시간 등을 놓고 볼 때 이번 대법원 판결을 환영하며 장기간 지치지 않고 투쟁해온 노동자들의 투쟁에 깊은 연대의 마음을 전한다”며 감사인사를 했다.

김 위원장은 이어 “이번 판결에서 제외된 2차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해 이후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지속적인 연대투쟁을 하겠다”고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