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가 연수구 지역을 시작으로 정당 현수막에 대한 철거 작업을 시작하던 모습 (사진=인천시)

 

(뉴스통신=배영수 기자) 최근 인천시 국정감사에서도 다뤄졌던 정당 현수막 설치 문제를 놓고 각 정당이 고민에 빠졌다. 

정치혐오가 조장될 수 있는 메시지의 현수막을 철거하는 것을 시민들은 압도적으로 찬성하는데 정작 그 행정이 위법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23일까지 인천시와 행정안전부 등의 취재 내용을 종합해 보면 현재 인천시가 정당 현수막 철거를 조례로 제정해 철거 작업을 단행하고 있는 가운데 행안부는 상위 법을 근거로 해당 조례가 위법하며 국회에서 법 개정을 먼저 해야 한다는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상태다.

정당 현수막 문제는 지난해 12월 11일 옥외 광고물 법이 개정된 이후 줄곧 논란의 상태였다. 개정 당시만 해도 정당의 규모나 상황에 관계없이 정당 활동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는 나쁘지 않았다는 평가도 있었다.

해당 개정된 법 제8조 8항은 “정당이 통상적인 정당 활동으로 보장되는 정당의 정책이나 정치적 현안에 대해 (광고물을) 표시·설치하는 경우 허가·신고 및 금지·제한에 관한 규정을 적용하지 않는다”라는 조항이다.

그러나 거대 양당(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원색적 비방과 막말 등을 게시하는 정당 현수막까지 등장했고 이런 현수막들이 거리 미관을 해치면서 관할 지자체는 담당 공무원이 업무를 하지 못할 정도로 시민들의 민원을 받아내야 했다.

그러나 이러한 정당 현수막 게시가 법으로 인정받고 있어 지자체들은 별다른 손을 쓰지 못했다가 인천시가 강제 철거를 단행하면서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지난 5월 인천시는 ‘국민의힘 과반’인 시의회를 통해 전국 최초로 지자체 조례에 대한 개정안을 통과시켰고 이를 근거로 7월 경부터 연수구를 시작으로 정당 현수막들을 모두 철거하고 있는 상태다.

당시 임춘원 시의원(남동1, 국)이 대표 발의했던 시의 조례안은 정당 현수막을 지정된 게시 장소에 선거구별 4개 이하로 제한하는 내용을 담았지만 내용에 아예 문제가 없는 건 아니었다.

개정안의 내용 중 ‘혐오·비방의 내용이 없어야 한다’는 내용은 정당 현수막의 메시지에 대해 인천시의 ‘사전 검열’이 사실상 가능해지도록 하는 내용이어서 지역사회 차원에서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해치는 악법’이라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또 해당 조례가 상위법을 위반하고 있는 만큼 행안부 혹은 사법당국에서 지적을 받거나 했을 경우 인천시가 정부로부터 받은 교부금 등에서 불이익이 있을 수도 있다는 지적도 일각에서는 있어 왔다.

실제 행안부 역시 “상위법에 위임조항(지자체가 권한을 위임받아 처리할 수 있는 제도조항 등) 등이 없기 때문에 시의 조례는 위법하다”는 이유로 인천시의 조례개정 및 철거 작업은 하지 않았어야 했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런데 인천시가 조례 개정을 완료하고 철거 작업에 나선 상황을 전후로 여야 관계없이 이에 동조하는 전국 지자체들이 늘어난 데다 최근 대법원이 행안부가 낸 조례 집행정지 신청을 기각하면서 분위기 자체는 상당히 바뀌어 있는 상태다.

실제 인천시의 경우 최근 시민 2천 명을 ‘샘플’로 뽑아 조례개정안의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응답한 시민의 87.5%가 정당 현수막 강제 철거에 동의의 뜻을 밝힌 것도 분위기가 바뀌었음을 인증하는 지표 중 하나다.

그러자 인천시의회는 인천시에 철거 작업을 계속 하라고 권유하는 동시에 지난 7월 대법원에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하고 옥외 광고물법의 해당 내용에 대한 위헌 여부를 대법원이 판단해줄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그러자 대구시와 부산시, 광주(광역)시, 울산시 등 인천시와 ‘동급’의 광역지자체들을 중심으로 옥외 광고물 관련 조례를 제·개정하고 인천시와 같거나 비슷한 내용으로 정당 현수막에 대한 제어 및 정비 작업에 나섰다.

뒤이어 전남 순천시 등이 최근 조례 개정에 나섰음을 밝혔고 그 외 다른 기초지자체들 중 상당수가 비슷한 내용으로 조례 개정을 준비하는 상황으로 알려졌다.

그러자 지난 19일 열렸던 인천시 국정감사에서는 유정복 인천시장과 같은 당 소속의 국회의원들(권성동, 정우택 등)이 유 시장에게 “잘했다, 고맙다”는 등의 메시지를 던져가며 편을 드는 자세를 연출하기도 했다.

이들 국회의원들은 당시 국감 자리에서 “인천시의 자체 조사 결과 등이 있으면 국회에 제출해 달라, 법 개정의 근거로 삼아 보겠다”고 유 시장에게 요구하기도 했다.

아직까지 행안부는 자세를 바꾸려는 움직임은 없는 상태다. 현행 옥외 광고물 법이 개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법에서 위임하지 않은 장소, 개수 등 사항에 대해 조례로 규정하는 것은 위법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물론 여기엔 아주 타당한 이유가 있다.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국가인 동시에 법치국가인 이상, ‘법 위에 조례가 서는 거꾸로 된 상황’은 정부부처로서 인정할 수 없다는 논리다.

행안부 역시 정당 현수막에 대한 문제는 인지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법과 절차까지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철거 작업을 해도 법을 먼저 바꾸고 그 다음 해도 늦을 게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인천의 지역사회 일각이나 주민들 사이에서도 일부 동조하는 경우가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미추홀구 주민은 “우리 동네에서도 소위 ‘꼴불견’ 식의 현수막이 마음에 안 드는 경우가 있었지만 아예 말이 안 나오게끔 법을 개정하고 이후에 철거했으면 이렇게까지 뜨거운 논란이 되진 않았을 것 같다”는 의견을 전해왔다.

연수구의 한 주민은 “사실 현수막 철거는 찬성하는데 시급한 문제라고 생각은 안 했다”면서 “총선도 가까워오고 하다 보니 법보다 ‘정치 싸움’을 우선하는 분위기로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은 든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결국 이 문제를 별 말 없이 해소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실제로 국회에는 총 17건의 옥외 광고물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는 상태다.

행안부도 내심 조속한 법 개정을 원하고 있는 상태다. 행안부 측 관계자는 “정당 현수막 난립을 막자는 취지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각 지자체에 내려보냈지만 이는 권고사항에 불과하기 때문에 결국 개정이 빨리 이뤄지는 게 정답”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