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수 기자
(뉴스통신=배영수 기자) 인천시의 사전검열 및 차별행정 논란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인천여성영화제가 미추홀구 소재 ‘영화공간주안’에서 14일 예정대로 개막했다.
16일까지 열리는 영화제에서는 14일 현재 영화제 현장 입구에서 영화제에 반대하는 단체들이 기자회견을 여는 등 ‘맞불’을 놓고 있는 만큼 ‘정상운영’에 의욕을 보이고 있는 주최측 역시 긴장의 끈을 늦추지는 않고 있는 모습이다.
영화제 조직위원회는 이날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환란의 시대: 무너뜨리고 연결하기’ 주제의 제19회 인천여성영화제 개막일”이라며 “어떤 환란 앞에서도 꿋꿋하고 즐겁게 영화제를 성사시키는 것과 더불어 인천시의 사전검열과 차별행정에 대한 투쟁 또한 멈춤 없이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영화제에 대한 인천시의 행정에 대해 조직위는 ‘차별행정’이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지역사회 전반은 ‘차별’의 수위를 넘어 ‘탄압’에 가깝다는 평가와 함께 백보옥 인천시 여성정책과장 시 담당 지원부서가 ‘행정적 전횡’을 저지르고 있어 문제라는 평가가 중론이다.
2019년 주민참여예산사업의 제안이 수용돼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인천시가 보조금을 지원해 줬고 올해도 4천만 원 지원이 약속돼 있었으나 인천시는 돌연 특정 작품을 문제삼아 상영작 배제를 요구하며 보조금 지원이 중단될 수 있다는 식의 메시지를 건넸다.
상영작 중 성 소수자 여성이 등장인물로 나오는 작품이 있었는데 “잘못된 성 인식이 생길 수 있다”, “교육적 악영향을 끼친다”며 문제를 삼았으나 한달여 전 역시 인천시 주최로 열렸던 다른 지역영화제에서는 문제없이 상영됐으며 이후 별다른 영향도 없었다.
이 과정에서 백 과장이 조직위 측에 이 같은 내용이 포함된 메시지를 직접 전한 것으로 알려지며 일각에서는 “특정 공직자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지원부서의 공직자 지위를 이용해 사실상의 협박을 한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도 나왔었다.
여기에 이행숙 인천시 문화복지정무부시장은 조직위 측에 “상영작에 탈동성애 작품을 섞어보라”는 코멘트를 전한 게 확인되면서 더 논란이 됐다.
‘탈동성애’라는 의미가 기본적으로 성 소수자에 대한 혐오의 정서를 기반하는 만큼 이 부시장의 발언은 결국 ‘인천시가 공개적으로 혐오 정서를 장려하고 부추긴 꼴’이 됐기 때문.
또 범위를 넓혀 세계 유수의 국제적인 영화제(칸, 베니스, 베를린 등)에서 성 소수자 주제 혹은 그들이 등장하는 영화들이 인천시가 내세우는 이유로 배제되는 법은 없는 만큼 시선에 따라서는 ‘지원부서의 권력’을 시 공직자가 악용한 것으로 해석도 가능하다.
조직위 측 역시 해당 공직자와 인천시 등이 행정권한을 악용했다고 판단하고 지난 13일 유정복 인천시장은 물론 백보옥 과장까지 ‘피진정인’으로 지목해 국가인권위원회 진정을 제기한 만큼 추후 인권위의 판단도 이슈가 될 것이 자명해졌다.
이미 조직위는 이 같은 상황을 전후로 인천시 지원금을 거부하고 크라우드 펀딩 등 시민들의 모금 방식으로 운영하겠다는 뜻을 밝혀 왔는데 최근 조직위 측이 진행한 펀딩에는 목표액의 200%를 넘는 금액이 모아져 인천시민 및 영화 애호가들에 대한 지지도 확인할 수 있었다.
조직위는 14일 개막을 알리는 공지글을 통해 관람객 등을 중심으로 서명운동을 진행할 계획도 함께 밝혔다.
조직위 측은 “인천시의 차별행위에 대한 인권위의 철저한 조사 및 조치를 촉구하며 우리는 인권의 가치가 바로 세워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서명운동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서명부는 추후 인권위에 제출될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일각에서는 이 같은 인천시 행정이 유 시장의 소속 정당인 국민의힘에서 비롯된 게 아니냐는 의심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까지 운영됐던 ‘주민참여예산센터’의 운영과 관련해 시민단체인 ‘인천평화복지연대’와 정의당 등을 공개저격했던 국민의힘 ‘시민단체 선진화 특별위원회’에서 나온 언급들을 확인한 바 당시 국힘 특위가 이 영화제에 대해서도 딴죽을 건 바가 있었기 때문.
당시 국힘 특위는 “영화제 사업을 수행한 인천여성회 전·현직 회장이 예산을 심의하는 위원회나 센터, 협치단 구성원에 포함됐다”고 지적한 반면, 조직위 측은 “잘 알아보지도 않고 하는 주장으로 자신들이 직접 확인했다면 자신들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쯤은 알고 있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이런 정황들을 감안하면 유정복 시정부로 시 정권이 바뀐 뒤 ‘정당 기호’에 맞지 않는 사업이나 문화축제 등에 대해 ‘정당 측 의견’이 공직사회에 압박이 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지역사회 일각에서 나오는 것인데 추후 인천시 등의 해명이 필요한 부분으로 보인다.
한편 영화제는 이날 15시부터 영화공간주안 4관에서 ‘어쩌다 활동가’를 시작으로 3관 단편섹션 Part.1(4편의 단편영화 묶음 상영), 19시 개막식과 함께 ‘퀸의 뜨개질’을 개막작으로 일정을 시작한다.
일단 영화제 자체는 차분함 속에서 큰 탈 없이 정상적으로 진행되는 분위기지만, 우려할 만한 부분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기자가 14일 오후 현장을 방문했을 당시에는 현장 안에서 훼방을 놓거나 하는 시민은 없었지만 영화공간주안 입구에서는 영화제를 반대하는 ‘인천범시민연합’이라는 이름(일원들이 기자에게 직접 언급하지 않은 관계로 이들의 현수막에 적시된 대로 표기함)의 단체가 기자회견을 진행하는 모습이 있기도 했다.
이 단체 일원들은 취재차 영화제 안팎의 모습을 사진촬영하던 기자에게 “어디서 왔느냐”, “소속을 밝히고 명함을 달라”는 식으로 거친 반응과 명함 제출을 강요하는 등의 행동을 보이면서도 자신들의 소속이 적시된 명함 및 회견문 등 일체의 자료는 전혀 건네지 않았다.
통상적인 기자회견 현장에서 ‘자신들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기자회견’의 주체들이 취재기자 등 취재 인력을 향해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도 흔치는 않은 일이다.
반면 영화제 조직위 및 스태프들은 전반적으로는 차분히 진행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다만 바깥에서 반대 주체들이 피켓을 들고 머물고 있는 14일의 상황은 예의주시하고 있는 분위기다.
현장에서 만난 손보경 조직위원장은 “오늘(14일) 개막작을 비롯한 작품들은 성 소수자 등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어서 그들(반대세력)이 굳이 들어와 방해를 놓을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보는데 성 소수자 다큐작인 폐막작 때는 방해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본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손 위원장은 “영화제의 근본 취지는 정치와는 전혀 상관없는 ‘성 평등’을 추구하는 것이라, 사실 조직위 차원에서는 주변의 정치적 이야기 등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며 “성 평등의 취지를 인천시 담당 공직자 등이 제대로 이해했다면 이런 행정을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16일 폐막작으로 선정된 다큐멘터리 영화 ‘두 사람’은 인천시에서 성 소수자 문제를 삼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과거 해당 작품이 상영된 그 어느 지역에서도 인천시처럼 문제를 삼은 전력은 없었다.
‘두 사람’은 한국인 파독 간호사 커플의 생애를 다루며 영화를 통해 성 소수자들이 세상 속에서 평화롭게 삶을 영위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차분한 느낌의 다큐멘터리다.
영화 전반에 걸쳐 (일각에서 주장하는) 청소년이 봐서는 안 되는 자극적인 장면 등은 전혀 없으며 이미 해당 작품을 상영한 전국의 다른 영화제들을 통해 ‘문제없음’이 인증도 돼 있는 상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