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여성영화제 조직위원회와 유관 단체 및 영화제를 지지하는 212개 단체 관계자들이 22일 인천시청 앞 광장에 모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인천여성영화제)

 

(뉴스통신=배영수 기자) 인천시가 인천여성영화제 측에 ‘성 소수자(퀴어)’ 주제의 영화를 상영하지 말라며 사실상 ‘사전 검열’과 같은 행위를 한 것에 대한 논란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분위기다. 

특히 시가 콕 짚어 문제를 삼은 작품은 지난달 다른 영화제에서는 문제 없이 상영됐으며 이후 지역 갈등 혹은 청소년의 성 인식 등 논란도 나오지 않았던 만큼 인천시가 종교단체 등 다른 단체들의 압박에 의해 일종의 ‘무리수’를 둔 게 아니냐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인천여성영화제 조직위원회(이하 조직위)는 22일 인천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영화제 상영작을 사전검열하고 성소수자 영화 배제를 요구한 인천시 간부에 대해 징계 및 공식 사과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 기자회견에는 인천여성영화제 측과 연대를 표명한 단체들의 이름이 눈에 띄는데 (사)서울국제여성영화제와 (사)광주여성영화제 등 국내 여성영화제와 (사)인천여성회 등 시민사회단체까지 무려 212개 단체들이 힘을 보탰다.

이날 조직위가 징계를 요구한 대상은 백보옥 시 여성정책과장이며 공식 사과를 요구한 대상은 이행숙 인천시 문화복지정무부시장이다. 물론 사과 요구 대상에는 유정복 인천시장도 ‘사실상 포함’됐다.

조직위는 백 과장에 대해 “인천여성영화제 사전검열은 명백한 갑질행정으로 유 시장이 응당 백 과장을 징계하는 동시에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부시장에 대해서도 “성소수자 관련 혐오와 차별 발언을 했다”며 공식 사과를 요청했다.

올해로 19회를 맞은 인천여성영화제는 2019년 주민참여예산사업으로 제안된 것이 수용되며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인천시가 보조금을 지원해 줬다. 올해도 인천시는 4천만 원을 지원해주기로 한 터였다.

그러나 인천시는 이 과정에서 뜬금없이 영화제 상영작 중 성소수자 주제의 영화를 문제 삼았다. 이에 조직위는 시가 실행 자체를 고의적으로 지연시켰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중재에 나서겠다는 이 부시장은 ‘동성애 영화 한 편과 탈동성애 영화 한 편을 나란히 상영하면 어떠냐’는 식의 발언을 했는데 영화제 근간을 흔들수도 있는 코멘트여서 논란이 더 불거졌다.

‘탈동성애’라는 주제는 동성애를 ‘정신병’으로 규정하고 동성애에서 벗어나는 것을 권유하는 운동에서 비롯된 만큼 조직위는 이 부시장의 발언이 명백히 차별과 혐오를 전제하고 있다며 더욱 날을 세웠다.

이미 조직위는 영화제에 대한 인천시의 사전 검열이 ‘소수자를 향한 차별과 혐오’라고 규정하고 올해는 시 지원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행사를 하기로 한 상태다.

손보경 인천여성영화제 조직위원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시는 공적자금이 투입되는 만큼 관리 차원에서 영화 목록을 검토하겠다고 하지만 이것이 바로 ‘검열’이며 ‘갑질행정’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손 위원장은 “시가 콕 짚은 영화는 여성의 이야기이면서 성소수자의 이야기로 여성영화제 취지에 무엇보다 적합하다”며 “백 과장은 해당 영화를 상영작에서 제외하지 않으면 예산집행 승인을 하지 않겠다고까지 했다”고 폭로했다.

이어 “개인의 생각만으로 몰상식한 행정을 하고 영화제의 근본을 훼손하려 든 백 과장을 징계하고 탈동성애란 발언으로 상영작 선정에 관여하려 든 이 부시장이 공식 사과하라”고 강조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측 관계자들도 참여해 조직위에 힘을 보탰다. 박소현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집행위원은 “지자체가 보조금을 지원한다는 이유로 상영작을 제외하라는 행정 태도를 보인 것이 이미 영화제 자율성을 침해받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더불어 “이미 많은 사람들이 여성영화제를 통해 성소수자 영화를 감상하고 그들에 대해 생각하게끔 했던 만큼 인천시는 시민이 문화예술을 누릴 수 있는 자유와 존엄성을 침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직위는 공무원들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인권 인식 부족이 이번 사태를 낳은 원인이라고 지목한 뒤 백 과장의 징계 및 이 부시장의 공식 사과, 재발방지대책 요구 등을 담은 의견서를 시장실에 제출했다.

문제는 또 있다. 인천여성영화제에서 문제를 삼은 작품이 인천시 주최의 다른 영화제인 ‘디아스포라 영화제’에서는 문제 없이 상영됐고 ‘인천시가 우려하는 내용’의 후폭풍도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인천시가 문제를 삼은 상영작은 베를린에 거주하는 파독 간호사 동성커플에 대한 다큐멘터리 작품인 ‘두 사람’인데, 이 영화는 지난달 인천시 주최인 디아스포라 영화제에서는 별다른 문제 없이 상영이 됐었다.

디아스포라영화제는 인천영상위원회가 주도하는데 인천영상위의 이사장은 인천시장이다. 지난해 9월 유정복 시장이 임명한 백현주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회복지문화분과 전문위원이 영상위 운영위원장직을 맡아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해당 작품은 디아스포라 영화제에서 별다른 논란 없이 상영됐으며 이후 지역 내에서 별다른 사회적 문제도 발생시키지 않았다.

취재 결과 두 영화제를 담당하는 담당부서가 다른 것으로 확인이 되는데 이렇게 되면 별다른 문제가 없는 부분을 백 과장이 자신의 판단에만 근거해 개입했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조직위 측이 사실상 백 과장의 징계를 요구하는 결정적인 이유다.

예술인들도 인천시의 이러한 행정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 영화인은 “같은 영화제에 대해 담당부서가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행정자세를 보이는 것은 시의 오락가락한 문화정책의 현실을 쓰라리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꼬집었다.

인천 태생의 한 뮤지션은 “예술가나 단체들이 활동을 하면서 공적지원을 받을 일들이 있을텐데 인천시 및 유관기관들이 이렇게 검열과 갑질을 한다고 하면 문제가 크다”며 “인천시가 얼마전 재외동포청을 유치했다고 자랑스러워하던데 그 동포들이 가졌을 문화다양성에 대해서도 검열을 하겠다고 나설지, 우려가 참 크다”는 의견을 전해왔다.

이런 비판에 대해 당사자 중 한 명인 이 부시장은 “반대의 의견을 내는 사람들도 고려하자는 취지에서 중재안을 낸 것일 뿐 혐오의 의도는 없었다”며 “시 보조금 사업이기 때문에 관리감독 차원에서 사업계획서를 받아보는 등의 행정은 했지만 이 또한 작품 선정에 개입하려는 등의 의도는 아니었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