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수 기자
(뉴스통신= 배영수 기자) 이태원 참사 직후 애도의 분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행정안전부가 취하고 있는 자세가 뭔가 석연찮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별다른 이유도 없이 각 지자체에 ‘실내공간’에서 하라는 내용, ‘사망자’라는 표기를 사용할 것을 ‘적극 협조하라’는 식으로 내려보낸 것이 확인되면서, 인천시를 비롯한 일부 지자체들이 사실상 시민 높이에 합당하지 못한 준비를 하는 데에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다.
지난 29일 일어난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행안부는 인천시를 비롯한 각 지자체에 ‘이태원 사고 관련 지역단위 합동분향소 설치 협조’라는 제목의 공문을 전국 지자체에 발송했다.
해당 공문에서는 각 지자체로 하여금 ‘조용한 실내공간’에서 하고, 제단 중앙에는 ‘이태원 사고 사망자’라고 표기하도록 지침을 내리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에 인천시는 두 곳에 마련한 합동분향소에 이 지침을 그대로 따라 3일 현재 운영하고 있다.
이미 참사가 일어난 서울 이태원에서는 지하철역사 입구에 자율적인 분향이 가능하도록 돼 있고, 서울시 차원에서도 ‘시민광장’이라는 야외광장에서 열고 있다. 인천시와 연수구 등 야외공간의 분향소들 역시 별다른 문제나 충돌이 없는 상태다. 물론, 조문과 추모를 하는 공간이 반드시 실내공간일 이유도 “납득되지 않는다”는 의견이 중론이다.
추모와 애도의 분위기가 현재 경찰은 물론 정부의 책임론까지 불거지는 분위기를, 이미 ‘세월호 참사’를 경험해봤던 행안부가 사전에 막으려 한 것은 아닌지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추모의 분위기는 실내공간보다 야외공간에 마련된 분향소에서 더 적극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평가다.
3일 현재까지 행안부는 각 지자체에 실내공간에서 하도록 한 이유에 대해는 질서 유지, 접근성 등의 차원이라고만 밝히고 있다. 행안부의 이러한 설명이라면, 야외에 분향소를 차리면 시민들이 의도적으로 질서를 깰 수 있다는 논리가 되는데 이 또한 논란이 될 수 있다.
행안부는 논란을 부른 해당 공문과 관련, “실내공간 설치 등 협조공문은 단지 권고사항일 뿐”이라며 “지키지 않은 지자체에 패널티를 가할 부분은 결코 아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당초 시가 접근성이 좋지 않은 시청사 대회의실에 분향소를 마련했을 때에도 행안부는 “인천시 잘못“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인천시 총무과 관계자는 “통상적으로 행안부 등 중앙정부에서 그같은 공문이 내려오면 그걸 일개 공직자들이 어떻게 무시를 할 수 있겠냐”며 “사실 우리도 처음에 애뜰광장 같은 곳에 설치를 하고자 했으나 행안부 공문 때문에 바뀐 것”이라고 반박했다. 접근성이 나쁜 곳에 분향소를 마련한 책임이 행안부에 있다는 입장으로 읽힌다.
참사 직후 여론이나 정황을 살펴보면, 정부가 정치적인 이유 등으로 추모와 애도 분위기를 의도적으로 축소시키기 위해, 눈에 잘 띄지 않는 실내공간으로 하도록 행안부 윗선에서 내린 지침일 수도 있음을 의심할 수 있는 여지가 분명히 있다.
이번 참사의 명칭을 ‘사고’로 기재토록 하는 것과 ‘사망자’로 표시하는 것도 논란을 부르고 있다. 이 역시 공문에 기재된 내용인데, 전국적으로 논란이 일고있는 상황. 결국, 일부 기관과 지자체들은 ‘참사’, ‘희생자’ 등으로 변경해 조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행안부는 해당 논란과 관련, “가해자와 책임소재가 아직 객관적으로 확인되지 않았기 중립적인 용어가 필요하다고 봤다”고 밝혔다. 하지만 ‘참사’와 ‘희생자’의 의미, ‘사고’와 ‘사망자’의 의미를 분석해 보면 정부가 책임권한을 축소하고 떠넘기려는 의도가 있다는 해석 역시 얼마든 가능하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참사’의 사전적 의미는 ‘비참하고 끔찍한 일’로, 사고는 ‘뜻밖에 일어난 불행한 일’로 표시돼 있다. ‘사고’로 표시가 되면 “우리 정부는 최선을 다했으나 본의 아니게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읽힐 수 있고, 이렇게 되면 정부 책임이 한결 가벼워질 여지가 생긴다.
이러한 논리는 실제 최근 논란이 점점 불거지고 있는 이상민 행안부장관의 “경찰력이 투입됐다고 해결됐을 문제가 아니다”라는 식의 논리와도 일치한다. 즉, 정부가 처음부터 정부 차원의 책임이 아님을 강조하려 했고, 그것이 행안부의 공문에서도 자연스럽게 투영됐다는 분석이다.
‘희생자’와 ‘사망자’의 차이는 더더욱 명확하다. ‘사망’의 의미는 단순히 ‘사람이 죽었다’는 의미지만, ‘희생’의 의미는 ‘특정 목적을 위해 자신의 목숨이나 재산, 이익 등을 버리거나 빼앗김, 혹은 사고와 자연재해 등으로 애석하게 목숨을 잃음’이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일부 보수 지지자들 사이에서 “이태원 사망자들이 무엇 혹은 누구를 위해 희생했느냐”고 비아냥대는 댓글들이 ‘네이버 뉴스’ 등지에서 자주 보이고 있는데, 이는 표준국어대사전이 설명하고 있는 ‘희생’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쓴 ‘저열한 수준의 악플’에 불과하다.
행안부가 ‘사망자’라고 표기함으로서 자신들의 책임소재를 가볍게 하거나 없애면서, 표기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국민분열을 의도해 애도의 분위기를 희석시키려 한다는 분석도 가능한 상황이다. 실제 <한겨레> 등 주요 중앙언론사들의 사설에서도 이미 이러한 분석이 나오고 있는 상태.
따라서 일부 지자체들은 행안부의 이러한 지침이 잘못됐다고 보고, 합동분향소의 명칭을 변경하고 있는 상태다. 이중 일부 지자체는 행안부의 이러한 자세가 ‘의도적’이라는 분석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도는 김동연 경기지사가 지난 2일 합동분향소 2곳의 명칭에 대해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에서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로 변경할 것을 지시하면서 경기도 내 ‘사고 사망자’의 명칭은 ‘참사 희생자’로 전면 교체됐다.
이어 광주광역시와 전라북도 및 전라남도, 제주도, 서울시교육청 등도 공식적으로 ‘참사 사망자’로 명칭을 전면 교체하면서 시민들의 비판 여론을 수용하고 있는 상태다. 국내 주요 언론사들 역시 보수/진보 성향을 막론하고 자사의 기사에는 거의 ‘참사’ 및 ‘희생자’로 기재하고 있다.
하지만 인천시는 여전히 해당 명칭을 바꾸지 않고 있다. 인천시는 “합동분향소 설치와 명칭은 행안부의 지침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행안부에서 명칭을 바꾸라는 연락이 없으면 교체할 계획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사실상 ‘여론’보다는 ‘지침’만 보겠다는 심산으로 읽힌다.
결국 이러한 자세는 지역 시민단체들의 반발을 부르고 있다. ‘인천평화복지연대’는 3일 ‘이태원 참사, 국가는 어디에 있었나’라는 제목의 논평을 내고 “참사에 책임을 져야 할 정부 관료와 지자체 단체장은 책임 회피와 떠넘기기에 급급해하고 심지어 외신 기자들 앞에서 농담까지 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인천평복연은 논평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 ▲한덕수 국무총리·이상민 행안부장관 및 윤희근 경찰청장 즉각 파면 ▲범국민 차원의 철저한 진상조사와 재발방지대책 마련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논평에서는 비록 인천시에 대한 직접적인 겨냥은 없었으나, 사실상 인천시의 자세에 대해서도 같은 비판을 하고 있는 셈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박홍근 원내대표 등 주요 인사들이 “명백한 참사를 ‘사고’로 표현해 사건을 축소하거나 희생자를 ‘사망자’로 표현해 책임을 회피하려는 불필요한 논란을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은 이번 참사와 관련해 “참사 관련 1분 1초까지 다 밝히겠다”며 국정조사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자 국민의힘은 정진석 비대위원장 등이 나서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법 개정부터 하라”며 이를 가로막고 있는 실정이다.
여당 인사들이 이번 참사 문제와 관련해서조차 ‘검수완박’ 등의 단어를 먼저 꺼냈다는 것은 사실상 해당 참사를 두고 ‘정쟁화’를 하겠다는 심산으로 읽힌다. 시선에 따라서는 굉장히 부적절하다는 비판도 나올 수 있는 부분. 이에 대해 정의당은 “수백 명이 생명을 잃던 그때 국가는 어디 있었느냐는 국민의 절규에 국회가 응답해야 한다”며 “국민의힘도 국정조사에 적극 협조하라”고 촉구하고 나서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