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수 기자
(뉴스통신=배영수 기자) SPC그룹의 부적절한 경영방식이 결국 대규모 불매운동으로 이어지는 그림이다.
직원이 제빵기계에 끼어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지만 다른 직원들에게는 그 현장에서 그대로 제빵작업을 하게끔 했던 정황까지 나오면서 비판 여론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18일 화섬식품노조SPL지회, 고용노동부 등에 따르면, 15일 SPC그룹 계열사인 SPL의 평택 제빵공장에서 20대 노동자가 샌드위치 소스 배합기 기계에 빨려들어가는 사고가 있었다.
이 기계의 안전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생긴, 명백한 ‘산재사고’였다. 이 노동자는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현장에서 이미 숨진 상태였고, 심지어 사망자를 꺼내는 일도 현장 노동자들이었던 것으로 파악되면서 비난 여론은 더욱 확산됐다.
이어 16일 화섬식품노조는 SNS채널을 통해 “사망사고가 일어난 작업기를 흰 천 등으로 가리고, 당시 사고를 목격한 직원들도 (정신적 충격을 치료할 시간도 없이) 출근을 강행했다”고 전했다.
한국노총 역시 비슷한 시각에 같은 소식을 전했다. 국과수 등이 사고 조사 및 감식작업을 했음을 감안하면, 직원들이 제빵작업을 해야 했을 현장에는 사고 혈흔 등이 아직 남아있었을 것임은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즉, 사람 피가 흐른 현장에서 소비자에게 판매할 샌드위치, 빵 등을 만들었다는 얘기가 된다. 실제 주요 언론사 중 ‘한겨레’는 “피 묻은 빵”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내기도 했다.
화섬식품노조의 SNS 등을 보고 보도한 기사임을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문제는 SPC그룹이 해당 사망사고가 일어난 날 직원들을 출근시킨 것도 모자라, “런던에 파리바게트가 진출했다”는 홍보자료를 각 언론사에 배포했다는 점이다.
파리바게뜨는 영국 현지시간으로 지난 14일 런던 템스강 남쪽 배터시 파워스테이션 1층에 매장은 276.9㎡, 60석 규모의 영국 1호점을 오픈했다는 홍보자료를 뿌렸다.
화력발전소를 복합상업시설로 탈바꿈해 화제를 모은 곳이라며 애플 영국지사와 고든램지 버거, 스타벅스 등 세계적인 브랜드가 다수 입점해 있는 장소라는 설명이다.
해당 자료를 받은 언론사 중엔 “앙숙 프랑스 빵집 아녜요” 같은 장난스런 문구까지 곁들여 홍보기사를 낸 매체도 있었다. 당연히 해당 기사의 댓글은 해당 기자를 비난하는 댓글로 가득 찼지만, 18일 오후 4시 현재 해당 매체는 기사를 내리지 않은 상태다.
회사 측이 이 홍보자료를 배포한 시점은 16일, 그러니까 사망사고가 일어난 바로 다음 날이다. 이전부터 자신들의 회사 현장에서 나타난 여러 가지 노동자 처우 문제가 일어났고 결국은 사람이 죽어나가는 일이 일어났는데, 현장을 천 등으로 덮고 해외진출을 자랑했다는 얘기가 된다.
시선에 따라서는 ‘섬뜩함’마저 느껴지는 부분이다. SPC가 그룹차원에서 의도적으로 사고 관련 기사들을 ‘밀어내기’를 하려고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나올 수 있는 부분이다.
실제 SPC 불매운동은 처음에는 진보 성향의 시민이나 노동자 등을 중심으로 일어났지만, 현재는 ‘범국민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분위기다.
인천시민들의 페이스북 채널에서도 “사고 다음날 흰천으로 싸인 현장 옆에서 일을 계속했다, 노동자를 감정없는 기계로 보는 것 같다는 직원의 말이 가슴에 맺힌다”며 안타까워하는 반응이 있었고, “이미 SPC 브랜드(파리바게트, 베스킨라빈스, 던킨도너츠, 파스쿠찌 등)는 전체 불매”라고 못박는 등의 반응이 보이고 있다.
인천뿐만 아니다. 전국적으로 불매운동의 ‘여론 인증’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다. 실례로 대전시민 박모씨(34) 역시 “파리바게트 빵을 좋아했는데 이제 절대 안 갈 것”이라며 “나 하나쯤 불매한다고 얼마나 타격이 있겠냐만, 선혈이 남아있다는 현장에서 만든 빵은 절대 못 먹을 것 같다”고 섬뜩해했다.
한편 SPC그룹은 지난 17일 허영인 회장 명의로 사과문을 발표하고 “참담하고 안타깝게 생각한”고 밝혔다. 그러나 허 회장이 밝힌 그 ‘참담함과 안타까움’은 결국 허 회장 스스로가 만들어 낸 것이며, 사과의 시점도 ‘이틀이나 지난 뒤’라는 점에서 진정성이 의심되고 있다.
노동부는 15일 사고 이후 작업 중지를 명령한 상태다. 사고가 발생한 SPC 계열 SPL 사업장이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인 만큼 노동부는 현재 사업장 측의 중대재해처벌법·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여부를 조사 중에 있다고 밝혔다.
허나 노동부 역시 비판의 시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사측이 사고 현장을 가린 채 직원들에게 제빵업무를 강행한 상태에서 당초 일부 기계(9대 중 7대)에 대해서만 작업중지 명령을 내렸다가 뒤늦게 추가조치를 한 것이 밝혀지면서 역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