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수 기자
(뉴스통신=배영수 기자) 4월 10일 치러진 제 22대 총선거는 지속적으로 민의를 외면한 윤석열 정부에 대한 준엄한 심판이자 국민이 윤 대통령에 대한 신임을 거뒀다고 볼 수 있을 만한 ‘야당의 압승’이었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은 자신이 직접 사과나 반성의 메시지를 전달한 적이 없었다. 총선이 치러지고 닷새 뒤인 지난달 16일 국무회의에서 ‘회초리’ 등의 표현으로 사과의 메시지를 전달했다곤 하는데 소위 ‘인증’이 없었다. 대통령실 관계자가 ‘비공개 국무회의 발언’이라며 언급한 게 사실상 전부였다.
직접적인 대국민 사과의 모습은 거부한 셈이다. 기자는 당시 과정들을 보면서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사죄할 마음이 있는게 아니라 국민들에게 삐져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더더욱 우려가 됐다. 총선 전후는 물론 지금까지 윤 대통령이 보여준 대국민 태도를 감안하면, 이제 국민들과 싸우려고 악을 쓸 가능성이 높아지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
불행하게도 기자의 이런 우려는 현실이 되어가는 분위기다. 윤 대통령은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는 공수처에 문제가 있다며 국민보다 검찰 편을 노골적으로 들더니 결국 최근 채 상병 특검법 거부는 물론 21대 국회가 마지막으로 처리하려 했던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과 민주유공자법, 한우산업지원법, 농어업회의소법 제정안에 모두 거부권을 행사했다.
지금까지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은 모두 14건. 역대 정부 중 이승만 정권(49건)에 이어 두 번째로 많지만 사실상 ‘독보적 1위’다. 그도 그럴 것이 이승만 정권은 12년에 49건이고 윤 대통령은 이제 2년차에 14건.
윤 대통령의 거부권은 ‘빈도’로 보면 역대 어느 정부보다도 적극적으로 행사되고 있다. 그 스스로가 “거부권을 적극 활용하라”고 여당에 이야기한 것 하나로 이는 모두 설명된다. 자신과 대립하는 존재 자체에 대해 전면전을 하겠다는 뜻을 사실상 노골적으로 비추고 있는 것이다.
특히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채 상병 특검법은 자신(대통령실)과 국방부의 수사외압에 대한 국민들의 '진실규명을 염원한 목소리'였고 전세사기 특별법 등은 시급한 ‘민생’과 직결되는 사안이었다.
대통령실과 여당은 국회에서 이들 법안을 “야당이 주도했다”며 꼬투리를 잡고 있다. 그러나 이는 국회가 ‘여 아니면 야’로 구성됐기 때문인 것이고, 이 법안들은 국민들이 정부와 국회에 요구하는 사안이기도 했다.
그 요구를 정부가 안 들어줬으니 국회로 넘어간 거고 야당이 주도하게 된 건 ‘야당이 강조했기 때문’이 아니라 ‘민의에 의한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던 것이다.
사실상 윤 대통령은 야당을 볼모로 잡아, 자신의 거부권 남발에 대해 야당을 핑계대고 있는 셈이다. 대통령이 직접 “국민과 싸우겠다”고 얘기할 수는 없을 테니. 그러나 채 상병 특검에 대한 거부만 봐도 대통령은 국민과 직접 싸우는 길을 택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기자는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든다. 자신의 뜻에 반대하는 야당을 본인 스스로 사실상 ‘적’으로 돌리고 있듯 지난 총선에서 자신의 편을 들어주지 않은 국민들을 ‘우리 국민’이 아닌 ‘주적’으로 보고 있는 건 아닌지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윤 대통령이 행사한 거부권에 막힌 법안들 다수는 ‘국회에서 야당이 주도했다’는 이유로 막힐 만한 게 아니었다. 상식적으로 진실규명을 요구하고, 민생의 정상화를 바란다는 민의에서 나온 법안들이었기 때문.
이렇게 여러 민생법안들이 대통령에 의해 거부된 채 국회가 종료되자, 김대영 인천시의원은 30일 오전 자신의 SNS에 “사람 목숨은 신경 안 쓰는 거부권 대통령, 3년은 너무 길다”는 제하의 글과 함께 윤석열 정부를 “참으로 무능하고 무지하며 부도덕하고 불의한 나쁜 정부”라고 규정했다.
김 의원은 윤 대통령을 향해 “최소한의 것도 안하면서 대통령 대접만 받으려고 애쓴다”며 성토하기도 했다. 사실상 기자와 비슷한 우려 즉 ‘대통령의 대국민 꼬장’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이렇게까지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을, 상식적으로 ‘야당 때문’이라고만은 보기 힘들 것 같다. 실제 야당 내에서도 채 상병 특검법을 비롯해 대통령의 지나친 거부권 행사에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나오는 걸 보면 더더욱 그렇게 생각하기가 힘들다.
정말로 윤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자신이 삐져 있다는 뜻을 노골적으로 비추는 것일까. 그렇다면 가히 ‘최악’이다. 지난 총선의 결과를 만들어낸 국민들에게 적잖이 삐져 있고 이에 국민을 향해 “우리에게 표를 안 줬으니 이제 당해보라”는 ‘복수심’이 자명할 테니 말이다.
만약 정말로 대통령이 국민을 향해 악을 쓰듯 ‘대국민 복수전’을 시작한 것이라면 김 의원 말대로 3년은 너무 길어 보인다. 정치는 ‘치기어린 복수심’으로 하는 게 아니란 것을 기자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 사실상 모든 국민이 알고 있을 상식이겠지만.
※ 본 사설에서 사용한 ‘꼬장’이라는 단어는 ‘상대방의 일을 방해하려는 공연한 심술을 이르는 말’이라는 뜻으로 국어사전에 등재된 명사임을 밝혀 둡니다. 또한 ‘삐지다’라는 표현 역시 2014년 전까지는 비표준어였으나, 2014년 12월 ‘삐치다’와 함께 복수표준어로 인정된 동사임을 함께 밝혀 두는 바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