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수 기자
(뉴스통신=배영수 기자) 상위법을 무시한 조례를 제정하고 이에 따라 정당 현수막을 강제철거 중인 인천시가 정작 내부에서는 홍역을 치르고 있다.
만약 일을 진행시킨 공무원이 이러한 일로 법적 고소 및 고발조치 등을 당할 경우 뚜렷하게 보호받을 대책이 없는 만큼 유정복 시장을 비롯한 군수·구청장들이 일을 서두르는 게 아니냐는 일각의 지적도 나온다.
시는 12일부터 연수구를 시작으로 최근 개정된 옥외광고물 관련 조례에 따라 정당 현수막 강제 철거를 시작했다. 정당 현수막들이 난립해 도시경관은 물론 시민 불편으로 이어지는 만큼 가만히 둘 수 없다는 논리다.
24일 인천시에 따르면 12일 강제 철거 개시 이후 20일까지 인천 10개 군·구에서는 총 348개의 정당현수막이 철거됐다.
강화·옹진을 제외한 8개 군·구별로 보면 연수구가 100개로 가장 많고 부평구(95개)가 뒤를 이었지만 중구(5개), 계양구(6개) 등은 상대적으로 적다.
이 같이 지역별로 철거된 현수막들이 차이를 보이는 것은 조례를 개정한 인천시가 이로인해 상위법을 위반하는 조례를 만들게 된 이유가 크다.
개정된 조례는 당시 시의회 건설교통위원회 심의 결과 “보완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지정 게시대 제한 내용이 빠졌으나 임춘원 시의원이 본회의에서 이를 뒤집고 수정 발의를 하면서 ‘국민의힘 과반’의 시의회가 이를 통과시켜 논란이 되기도 했다.
개정 내용은 ▲정당 현수막은 지정 게시대에만 게시해야 한다 ▲설치 개수는 국회의원 선거구별 4개소 이내로 제한한다 ▲현수막의 내용에는 혐오와 비방이 없어야 한다는 내용이 있는데 이들 내용 모두가 상위법에 저촉되는 상태다.
특히 ‘혐오와 비방이 없어야 한다’는 내용은 인천시가 현수막 내용에 대한 ‘사전검열’ 논란으로 지역사회 등에서 지속적으로 지적을 받아왔다. 문제는 또 있다.
일선 군·구의 현장 공무원들이 정당 등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민·형사상 고소 및 고발 등으로 이어졌을 때 그 책임을 모조리 뒤집어 쓸 가능성이 생기는데 이렇게 된다면 해당 공무원은 딱히 하소연하거나 해결할 경로가 없다는 게 더 큰 문제다.
개정된 시 조례가 상위법에 어긋나는 만큼 이렇게 민·형사상 책임으로 이어진다면 법적으로 해당 공무원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나 장치가 아예 없고 인천시가 이를 만들 권한 역시 없다는 게 문제다.
때문에 행정안전부는 상위법 위임이 없어 위법하다며 대법원에 제소한 상태인데 임 의원 등 국민의힘 소속 시의원들은 “더불어민주당은 정치인 특권만 위한다”며 그 책임을 야당에 전가하는 듯한 발언을 쏟아냈다.
여기에 가장 많은 수의 철거 작업을 진행한 연수구의 경우 이재호 구청장이 한 언론 인터뷰를 통해 정당 현수막 문제를 언급하며 “한국의 두테르테라 불려도 할 일은 하겠다”고 밝히면서 해당 논란에 가세하는 듯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다.
현행 옥외광고물법이 ‘악법’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악법도 법인 만큼 나중에 고치더라도 일단 준수해야 한다’는 법치국가의 근본을 무시했다는 지적이 만만찮은데 지역 차원에서 이어지는 갑론을박을 실상 ‘현직’을 갖고 있는 정치인들이 부추긴다는 비난도 만만찮게 나온다.
옥외광고물법은 통상적인 정당 활동 범위의 정당 정책이나 정치적 현안에 대해서는 별도 신고나 허가를 받지 않고 제한 없이 현수막을 게시할 수 있도록 돼 있어 인천시 조례와는 상충하는데, 이런 경우 조례보다는 법이 우선이다.
따라서 정당현수막을 철거한 공무원이 있다면 조례로는 정상이겠지만 상위인 법으로 보면 ‘위법행위’ 및 ‘범법자’가 되는 것인데 이를 보완하기 위한 방책은 어디에도 없다.
때문에 인천시가 지금까지 철거한 정당현수막의 대다수는 옥외광고물법에 규정된 게시 기간(15일)의 위반 혹은 어린이보호구역에 불법 게시된 등의 사례가 더 많으며 정당의 자진 철거 및 군·구가 미리 정당 측 동의를 얻어 의사를 묻고 철거한 사례가 많은 상태다.
비교적 많은 철거가 이뤄진 구의 공직사회 역시 공무원 보호가 전혀 안 돼 있는 상태에서 강제된 경우가 많다며 우려를 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구청 공무원은 “조례가 있다해도 공무원 신분인 우리가 어떻게 법까지 위반하면서 행정을 할 수 있겠냐”며 “많은 수를 철거한 곳 역시 위에서 강제해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했을 게 뻔하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다른 구청 공무원은 “선거 등 이슈 때마다 정당들이 현수막을 걸어 선거전 등을 할 텐데 상위법 위반 문제로 문제 지적을 하게 되면 그 책임소재가 죄다 공무원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라며 역시 우려했다.
실제 인천시 공직사회에서도 최근 열린 정당 현수막 철거 관련 회의에서 현장 공무원에 대한 보호 대책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어 인천시 역시 해당 문제를 인지하고 있는 상태다.
인천시 내부에서는 정당 현수막 강제 철거를 ‘적극행정 면책(위반 사항이 발생하더라도 공익성과 타당성이 인정되면 불이익을 주지 않게 하는 제도) 대상’에 포함하는 안을 검토하는 중이지만 법을 위반하는 사례를 적극행정으로 포함하는 것 역시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도 개정 조례의 내용을 뜯어봤을 때 ‘사전검열 의혹’ 등 정치적 의도가 의심되는 상황을 감안하면 조례안의 내용이나 의도 등에 대해 ‘정치적인 부분’이 없다는 것을 지역사회 전반에서 인정받을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한 시민운동가는 “의혹과 논란이 나오는 시 현안은 대부분 그 의도와 과정에서 중앙 혹은 지역 정치인들이 관련돼 의심을 낳기 때문”이라며 “모든 의혹에서 자유로워지려면 ‘악법’ 소지가 있다 해도 일단은 지키면서 비판을 하고 고쳐가는 과정의 자세를 정치인들이 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