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통신=배영수 기자) 인천시가 부평 캠프마켓 B구역 내 조병창 병원 건물에 대한 존치 여부를 ‘철거’로 결정하면서 인근 주민들의 요구를 지나치게 수용해주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유럽 등 주요 선진국들이 자신들의 땅에 남은 역사흔적이 자신들 역사에서 ‘암울했다’는 이유로 지우지 않고 남겨두는 것처럼, 역사문화적 가치 자체에 대한 인식수준이 높아져야 한다는 시각도 곳곳에서 나온다.
인천시는 설 연휴 마지막날이었던 24일 캠프마켓 아카이브 구축 기본계획을 수립하겠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각 언론사에 배포했다.
보도자료의 내용에는 향후 캠프마켓에 대한 아카이브 구축 작업에 대해 5개 추진전략과 4개 분야 추진과제, 그리고 총 20개 세부과제를 세세히 나누고 아카이브 로드맵 5단계 10개년 계획 등 중장기적 과제들도 세세히 기재되어 있다.
시는 19일 철거 결정을 알리기까지 총 4번(그중 1번은 인천시가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음)의 소통간담회에서도 철거를 꽤 강하게 주장해 왔었다.
논의의 자리에서 존치 여부에 대한 찬반 단체가 명확히 대립하고 있는 상태에서 시 주무부서가 철거를 주장한 것이기에, 갈등관리전문가를 통해 갈등을 조정하겠다는 자세를 취해 왔다고는 하지만 결국 의견이 한 쪽으로 기우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기 때문.
이런 가운데 지역사회는 D구역을 포함한 다른 곳의 근현대 건축물들까지 시가 철거를 강행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이미 조병창 건물 존치여부를 논하는 자리에서 철거 편에 선 시가, 이후 다른 건축물들의 존치 여부를 논할 때도 사실상 같은 자리에 서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조병창 건물 철거 결정 과정에서처럼, 지역사회 차원으로는 소모적인 논쟁을 계속 부추기면서 이를 통해 “충분히 소통했(는데 안 됐)다”는 논리를 만들고 이를 통해 최종 결정은 결국 내부에서 이미 내린 결정을 강행 통보하는 공식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실제 시는 앞서 언급대로 19일 철거 결정을 내린 지 수일 만에 아카이브 작업 구축을 본격화한다는 내용으로, 로드맵 5단계 10개년 및 20개 세부과제 등 상당한 계획들이 다듬어져 있는 보도자료를 냈다.
이 보도자료는 ‘캠프마켓의 역사가 한 곳에... 인천시, 아카이브 구축 본격화’라는 제목인데, 이미 내부적으로 철거의 결정을 내린 시가 보도자료를 통상적으로 재가공해 보도하는 매체의 특징을 이용해 “자신들이 역사문화 가치를 존중한다”는 공식을 세워 일종의 ‘포장 행위’를 시도했을 거란 추정이 가능하다.

지역사회가 남은 D구역 등의 다른 근대건축물의 철거 여부에 우려를 보내는 것은 당연하다. B구역보다 일제강점기 및 미군정에 대한 역사자료로서 남겨진 건축자산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조병창 건물 이슈가 지역 차원에서 논란이 되는 것을 감지했던 문화재청은, 그 시기에 자체적으로 캠프마켓을 답사해 건축자산 조사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결과 문화재청은 D구역 71개 건축물 중 25개에 대한 보존권고 의견을 시에 전달한 상태다.
시는 D구역 반환 후 건축물에 대한 조사를 실시할 것이며 건축물 보존 기준도 국방부와 협의해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사실상 조병창 건물을 무너뜨리는 그 공식을 D구역에도 적용하겠다는 속내를 밝힌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실제 캠프마켓 인근에서 활동하는 시민활동가 및 문화예술가 등에 따르면, 인근 주민들은 캠프마켓의 모든 건축물을 허물고 모두를 공원화시키고픈 욕구가 높으며, 여기에 지역 부동산업계 등이 동조하며 여론이 형성됐다고 전하고 있다.
당시 부동산 카페에서 공원 조성 및 지역 개발에 악영향 있다고 우려하며 일제 잔재를 철거해달라는 글들도 계속 올라왔던 사실은 복수의 중앙 및 지역매체들의 보도를 통해 인증되어 있기도 하다.
실제 철거를 주장하는 편에 선 것으로 알려전 전직 인천시의원은 지난 지방선거 당시 부평구청장 선거에 출마한 바가 있는데, 이런 의견을 반영한 듯 당시에도 ‘기본 기조는 전면철거’라는 내용을 사실상 공약화해오기도 했다.
지형은 다르겠지만 인근 주민들은 인근의 일산 호수공원 같은, 넓은 면적의 녹지공원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집단으로 나서서 공원화의 욕구가 있다고 해도, 그 곳이 역사가치의 의미가 있는 흔적이 다수 남아있는 곳이라면 주민들이 역사의식 수준을 제고하고 다시 생각을 해야 한다는 의견도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유럽 등 선진국들이 자신들의 오랜 역사에 있어서 식민지 등 암울했던 시기 혹은 부끄러운 행위를 했던 시기를 인증하는 역사자산이 있다는 이유로 이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이를 보존해 ‘반면교사’로 삼아 교육도 하는 등의 ‘높은 역사의식’을 이제라도 본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민선7기 때만 해도 이들 주민들이 남아있는 건축자산들을 ‘일제 잔재’ 등의 논리를 대며 철거를 요구했을 때 시가 “일부는 철거를 해야겠지만, 보존하고 기억해야 하는 역사자산도 있다”며 이 요구들을 다 받아주지는 않으려 했던 것도 비슷한 이유였다.
그러나 19일 시는 철거 결정을 내린 보도자료를 배포하며 첨부한 민원자료에서 “철거요청은 총 5회 있었고 공감수가 모두 충족되었고, 반면 보존요청은 시민청원과 국민청원 단 1회씩만 있었으며 공감수는 미충족됐다”는 논리를 함께 내세웠다. ‘자신들의 결정이 곧 시민들 다수의 결정’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인근 아파트 단지 등 주민들이 단체행동을 하는 것과 시민활동가들의 행동은 규모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음에도, 시가 이를 철저히 무시하려는 듯한 자세를 보였다는 것이 지역사회 전반의 평가다.
결국 역사적 의미 등은 고려하지 않은 채 인근 주민들이 한 단체행동을 시가 전적으로 수용해 공적 행정에까지 적극적으로 반영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시민단체들과 정당까지 나서서 반대 입장을 표명하는 등 논란이 더 커지고 있는 결정적인 이유다.
조병창 건물의 존치를 주장해온 ‘일본육군조병창 역사문화생태공원 추진협의회’ 측은 “조병창 병원 건물 철거는 인천시의 불통행정이 낳은 결과”라며 “보존과 정화를 병행할 수 있는 방법이 제시되었음에도 독단적으로 결정해 사실상 시가 간담회의 의미를 스스로 없앴다”고 평가했다.
한 활동가 역시 “역사문화적 의미가 있는 곳임이 분명함에도 ‘닥치고 철거’라고 주장하는 것은, 시선에 따라서는 ‘집단이기주의’로도 보일 수 있는 부분임에도 시가 전적으로 한쪽 편에 서고 있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의견을 냈다.
정의당 인천시당 역시 시의 철거 결정과 관련해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배상문제가 국내외적으로 매우 이슈가 되고 있는데 시가 무조건적인 철거만을 하려는 것은 개탄의 대상이며, 최소한의 흔적은 남기겠다는 시 관계자의 발표는 부끄러운 역사의식이 드러난 것”이라고 논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