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찬식 기자
나창환 서해신문 편집이사
강화갯벌 문제는 다른 이슈와는 다르다. 강화의 교통체증을 확 개선한다거나, 강화 남단을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한다거나, 청년 일자리를 늘린다거나, 천원 택시를 도입한다거나, 각종 규제를 완화한다거나, 농어민 수당을 늘린다거나 하는 군수 후보들의 공약은 사실 해묵은 주제다.
교통 문제만 봐도 그렇다. 주말이면 강화 길은 ‘고통 길’이다. 초지대교와 강화대교 위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경험은 누구나 경험했을 터이다. 3000번 버스로 촉발된 강화의 교통행정 난맥상의 실체는 군민의 분노를 샀다. 수십 년간 인천시와 강화군청은 아둔한 행정을 했고 역대로 강화군을 대표하는 국회의원과 시의원은 손을 놓고 있었다. 경제자유구역 지정 문제는 또 어떤가. 대체 언제 적 얘기인가. 그동안 강화군수와 인천시, 중앙정부는 어떤 노력을 했는지 묻고 싶다.
▲“사탕으로 유혹하는 건 혹세무민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강화갯벌의 유네스코 자연유산 등재 이슈는 간단한 일이 아니다. 어찌 보면 주인공인 강화 군민은 가만히 있는데 남들이 왈가불가하는 격이다. 다시 사탕이 등장한다. 사탕은 달다. 먹고 싶어진다. 그렇다고 넙죽넙죽 받아먹다가 치아가 썩을 수도 있다. 혹세무민(惑世誣民)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강화에서 태어나고 자란 필자는 갯벌에 대한 남다른 사랑이 있다. 어릴 적 갯벌은 놀이터였다. 동네에 운동장이 없어 공을 멀리 던지고 받을 수가 없어 갯벌에서 ‘찜보’(일종의 야구 같은 놀이)를 했다. 친구들과 가무락도 캤다. 아버지는 숭어 낚시용 갯지렁이를 손으로 찔러 잡으셨다. 아버지의 그 빠른 손놀림은 동네 분들도 인정할 정도였다. 갯벌에는 짱뚱어와 게가 지천이었다.
갯벌을 따라 ‘후레질’(그물질)을 하면 싱싱한 새우가 그득했고 갯벌 주변의 갯바위에는 굴이 따닥따닥 붙어있었다. 철마다 갯벌에는 새들이 반갑게 날아들었다. 어릴 적에는 새 이름도 잘 몰랐지만 그저 신기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이런 정겨운 풍경이 드물다.
지천이던 짱뚱어와 게도 확 줄어들었고 갯바위에는 굴이 잘 보이지 않는다. 포구 주변에는 새우깡 맛에 빠진 새들만 날아들 뿐 철새 개체 수도 확 줄었다. 전 세계에 6,000여 마리밖에 되지 않아 멸종위기 동물 1급으로 지정된 저어새는 강화갯벌의 상징이지만 점점 보기가 힘들어진다.
필자의 개인적인 경험만으로도 강화갯벌은 잘 보존해야 할 필요성과 당위성이 넘친다. 강화갯벌은 한반도를 동서와 남북으로 가르며 굽이굽이 흘러온 한강과 임진강, 예성강이 실어 온 생명 물질의 집합체다. 온갖 물질이 켜켜이 쌓이고 쌓여 생명이 살아 숨을 쉬는 갯벌을 만든다.
양영유 단국대 교수
강화의 갯벌은 웅대하다. 마니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갯벌, 동검도 앞의 갯벌, 석모도 해명산에서 조망하는 갯벌은 자연의 준 천혜의 선물이다. 그런 만큼 전 세계 사람들을 강화로 불러들여 마음껏 자랑하고 강화의 브랜드 가치를 높여도 모자람이 없다.
▲강화갯벌은 생명의 집합체·지구촌에 알려야
그러려면 강화갯벌을 지구촌에 알려야 한다. 그 방법의 하나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가 거론된다. 서남해안의 5개 지역 갯벌이 유네스코에 등재되면서 강화갯벌이 화제의 중심에 서게 된 이유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의 핵심 개념은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다.
탁월한 보편적 가치, 참으로 멋있는 말이다. 탁월하기도 어려운데 인류의 현세대와 미래 세대에게 모두 중요한 보편적 가치까지 갖춘 게 지구상에 얼마나 될까. 강화갯벌이 그런 평가를 받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차다.
강화갯벌이 전남 순천만 국가정원·순천만습지, 독일의 바덴갯벌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는 것은 자랑스럽다. 순천만 국가정원과 순천만습지는 2023년 전국 1위(778만 명)의 관광객을 유치해 1조 5,926억 원의 경제적 가치와 2만여 명의 고용을 창출했다.
독일 바덴갯벌은 유네스코 등재 이후 연간 최대 10조 원의 관광 수입을 올리는 세계적인 생태관광지가 됐다. 수도권에 둥지를 튼 강화는 인천국제공항과도 가까워 이들 두 지역보다 더 유리하고 더 많은 관광객도 유치할 수 있는 지리적, 공간적 이점이 있다.
그렇지만 섣부른 장밋빛 희망은 금물이다. 사탕을 탐하다 이빨이 다 상할 수도 있어서다. 무엇보다 단계적인 절차가 중요하다. 순천만은 2006년 습지보호구역 지정, 2009년 생태계 보전지구 지정, 2015년 대한민국 제1호 국가 정원 지정, 2021년 순천시 전역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지정의 단계적 절차를 밟았다.
그러면서 도로와 교통, 상하수도, 숙박시설, 관광 콘텐츠 등 도시 기반 시설과 관광 인프라를 함께 구축했다. 단기와 중장기 계획을 수립해 차근차근 시행해야 비로소 ‘명소’가 탄생하는 것이다. 강화갯벌은 순천만보다 더 유리하다. 인천공항과의 근접 거리로 국제화하는 데 최적이기 때문이다.
나창환 대표와 어민들이 바다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뉴스통신)
그런데 유네스코 지정 주장만 있지 구체적인 청사진이 없다. 강화군도, 인천시도, 중앙정부도 마찬가지다. 수도권에서 강화는 홀대를 받아왔다. 수도권이라는 이유만으로 온갖 규제가 총동원됐는데 갯벌이 유네스코에 등재되면 규제가 더 심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당연하다. 유네스코로 지정되면 말뚝 하나 마음대로 못 박고 마음대로 뽑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런 우려와 불신을 해소하지 못하면 아무리 사탕발림해도 군민의 마음을 움직이기 어렵다.
▲강화 겹겹이 규제…재산권 침해 최소화 급선무
강화에 대한 정부의 행정적 규제는 현란하다. 수도권정비계획법, 국토계획법, 군사시설보호법, 문화재보호법, 도서생태계법, 습지 보전법, 산지관리법, 농지법 등 없는 게 없다. 공장 하나 지으려고 해도 수도권 공장총량제가 적용된다.
중앙정부와 인천시가 과연 강화군을 위해 어떤 애를 썼는가. 그런데 갯벌을 유네스코에 등재하면 어민들은 또 어떤 피해를 받을지 몰라 걱정한다. 갯벌에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주민들의 어업권과 재산권 침해가 없다는 보장을 할 수 있나.
전조는 시작됐다. 2000년 7월 강화 남단, 석모도, 볼음도 지역의 갯벌 약 4억 4,880만㎡(1억 3,600만 평)가 천연기념물 제419호로 지정됐다. 이 때문에 주민들은 해안선으로부터 일정 거리 안에서는 내 땅에도 창고 하나 짓지 못했고 문화재위원회의 현상 변경 허가를 받아야 했다.
그런 불편에도 정부와 인천시, 강화군은 아무런 보상을 해주지 않고 외면했다. 결국 군민들이 항의하고 민원을 끊임없이 제기하자 겨우 현상 변경 허용 기준이 완화됐다. 애초부터 강화 군민을 졸(卒)로 본 것이다. 그런 불신은 강화 군민에게 깊숙하게 꽈리를 틀고 있다.
강화 갯벌 전경 (사진=뉴스통신)
▲“군민을 卒로 보나”…일방 행정 민심이 혹독하게 평가할 것
강화갯벌의 유네스코 등재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어업 활동(습지보전 법 제13조)이나 개인의 재산권에 영향을 주지 않고 국내법에 따라 보호되며 이전에 등록된 지역에서도 어민의 생계 피해는 없었다”라고 주장한다. 한 마디로 혹세무민이다.
강화갯벌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다는 건 바로 관리주체가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즉 갯벌의 관리주체가 강화 군민에서 전 세계로 확대되는 것을 의미한다. 강화의 땅을 강화가 마음대로 못 하게 된다는 의미다.
인천시는 여론조사 결과 갯벌 등재가 우호적이라는 이유로 등재를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갯벌 등재에 따른 현실적인 고려와 주민 이해도 없이 단순한 설문조사만으로 결정할 사안은 아니다. 강화를 더 이상 ‘행정의 피해자’로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
우선 강화갯벌의 유네스코 등재 추진에 앞서 순천만처럼 단계적인 행정절차를 거쳐야 한다. 행정절차에 따라 선(先) 인프라 구축, 후(後) 등재의 절차를 밟아야 한다. 그러려면 강화 군민 대토론회, 설명회, 여론 수렴의 과정은 필수다.
강화 군민을 뭐로 보고 일방적인 행정을 하면 결코 민심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민심은 배를 띄울 수도 있고 뒤집을 수도 있다(水可載舟亦可覆舟). 그다음엔 인프라 구축이다. 관광객 수요를 예측한 교통망 확충은 기본이다. 영종~강화 연륙교 건설이나 지하철 강화노선 연장 같은 각종 공약이 구두선(口頭禪)에 그쳐서는 안 된다.
정부가 확실히 보장하고 인천시도 강화 홀대를 멈추겠다는 약속을 해야 한다. 교통망 확충과 더불어 강화의 관광인프라 기반 시설을 확충하고, 운영 인력 확충, 재산권 침해 방지, 규제 완화, 재정 투입 약속이 선행돼야 한다. 국가와 인천시 재정이 팍팍하다면, 강화군의 자체 해양 수익사업으로 재정을 확보하도록 적극 지원해야 한다.
강화 군민은 더 이상 규제의 희생양이 되기를 원치 않는다. 강화도의 독특한 생태계가 유네스코의 뛰어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 기준을 충족하듯 강화 군민의 자존심도 ‘뛰어난 보편적 가치’여야 한다. 재정 투자, 인프라 구축, 규제 완화를 먼저하고 강화갯벌을 유네스코에 등재해야 한다.
강화갯벌이 글로벌 가치로서 군민에게 자긍심을 심어주는 최고의 유산이 되는 걸 누가 반대하겠나. 찔끔 돈 몇 푼 얹어주고 생색만 내려고 시늉한다면 강화 군민을 잘 못 본 것이다. 수가재주(水可載舟), 역가복주(亦可覆舟)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