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영유 단국대 교수
은퇴한 지인들이 가끔 핸드폰에 살아가는 얘기를 올린다. 누구랑 만나 무슨 음식을 먹었고 어디 등산을 갔고 어디 여행을 갔고, 어떤 책을 읽었다는 내용이 주류다. 어떤 이는 주말농장이나 텃밭 가꾸는 사진도 올린다.
고추 10주, 고구마 10주, 가지 2주, 토마토 5주처럼 소꿉놀이 같다. 주말에 바람을 쐬고 땀도 흘릴 겸 농사를 짓는다는 얘기를 부러워하는 이들도 있다. “낭만적이다”, “멋지다”, “농부 같네”라는 댓글이 달린다. 그런 글을 접할 때마다 도시인이 자칫 농사를 ‘낭만’으로 생각할지 걱정이 된다.
전원생활 운운하며 “시골 내려가서 농사나 짓지”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그런 분은 농사일과 농민의 애환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도시 뜨기’에 불과하다. 삽질하며 흘리는 땀의 의미, 단 하루라도 돌 보지 않으면 마음이 아픈 농민의 진심을 느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모내기 철 ‘무자위’ 눈에 선 해
어릴 적의 아버지는 지금도 눈에 선하다. 모내기 철만 되면 비는 왜 이렇게 안 오는지, 농기계도 없던 시절 아버지는 더 힘들어하셨다. 비가 오면 서로 물을 대려고 새벽부터 물싸움하며 ‘무자위’가 여기저기서 돌아갔다.
무자위에 올라 발디딤을 하면 물레방아처럼 물이 올라갔다. 초등생 때는 무자위 질도 해봤다. 소로 논을 갈고 쓸리니 소는 얼마나 힘들고 아버지는 또 얼마나 힘드셨겠나 아버지가 밤에 주무시다 다리에 쥐가 나서 고통스러워하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옛 시절의 농사일을 경험하신 분들은 대부분 돌아가시거나 고령이다. 모내기가 한창인 요즘, 기계가 몇 번 지나가면 금방 논에 파릇파릇한 모가 인사한다. 모내기 장면을 보노라면 그 옛적에 고생하신 아버지와 동네 어르신 모습이 떠올라 눈물이 맺힌다.
기계화가 되었다고는 해도 농사일은 여전히 고되다. 친구는 모가 잘 못 돼 모판 2,500장을 다시 앉혔다고 한다. 애초에 7,500장을 했는데 결국은 모판을 1만 장 앉힌 것이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농민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계절인데도 도시인은 그런 사실을 모른다.
모는 내면 저절로 벼가 되고 쌀이 되는 것이 아니다. 장마철을 거치고 태풍을 잘 이겨내야 가을에 찰지게 여문다. 맛있는 쌀밥은 농민의 땀방울과 정성의 결정체다. 모내기가 한창인 요즘 도시인들은 가급적 농로를 이용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농민들이 경운기나 트럭을 이동하려면 몇백 평 모내기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농민의 정성에 곡식은 정직해
밭일은 또 어떤가. 밭일처럼 힘든 일도 없다. 고추는 심고 나면 말장을 박고 줄을 매줘야 한다. 바람이 불면 어린 고추나무가 부러지기 때문이다. 그 후에는 농약을 치는 일을 거듭해야 한다.
한여름에 성인 키만큼 자란 고추나무 사이로 경운기로 약을 주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아버지와 동네 어른들은 그런 일을 평생하셨다. 농사일이 고되어도 농민은 불평하지 않는다. 곡식은 정직하기 때문이다. 정성을 쏟는 만큼 잘 성장하고 잘 여문다.
밤사이 한 뼘이 자라 아침에 이슬을 머금은 식물을 보노라면 고단함이 싹 가신다. 필자도 고향 집 앞에 심은 나무와 감자를 보면서 그 마음을 느끼고 있다. 그런데 농민 대부분은 1년 내내 일을 해도 최저 시급(시간당 9,860원)만큼도 소득이 없다.
월 급여로 최저 시급은 209시간 근무를 기준으로 206만 740원이다. 연봉으로 단순하게 2,472만 8,880원이다. 물론 농하기가 있고 비교하기는 무리가 있어도 농민으로선 최저 시급도 꿈의 연봉이다.
▲농민 65%, 연 소득 천만 원 미만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농림어업조사’ 결과를 봐도 그렇다. 고령화와 청년 농의 법인화로 농촌도 ‘빈익빈 부익부’가 심화하고 있다. 농축산물 판매 금액 1억 원 이상 농가(4만2,400가구)는 전체 농가의 4.2%다.
이는 2022년의 3만8,600가구 보다 0.4% 증가한 수치다. 고령의 어르신이 계속 돌아가시니 농사의 대규모화는 시대적인 추세다. 반면 어르신 농민은 갈수록 가난해진다. 1년 내내 농사를 짓고 가축을 키워 팔아도 연간 1,000만 원도 벌지 못하는 농가가 전체 농가의 64.5%에 이른다.
농민 열 명 중 여섯 명 이상이 연간 소득이 1,000만 원도 안 된다는 얘기다. 도심이라면 살 수가 없다. 대한민국의 농가는 103만3,000가구, 농가 인구는 216만6,000명이다(2022년 기준). 20년 전인 2002년 208만1,900가구, 522만2,900명과 비교하면, 가구 수와 인구가 반토막 났다. 농민은 계속 늙어간다.
70세 이상은 75만6,000명(34.9%), 60대 65만3,000명, 50대 34만 2,000명 등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율이 전체 농민의 절반이다. 이런 추세라면 당장 10년 후인 2034년 대한민국의 농촌은 어떻게 될 것인가. 첨단 농업기술의 발전에 따라 스마트농업이 확산하고 소농에서 대농 위주로 재편해도 ‘농촌 소멸시계’를 늦추기가 쉽지 않다.
▲강화 농민 급감…종합 대책 절실
우리 강화군은 더 절박하다. 강화군 인구는 현재 6만8,941명이다. 이 가운데 65세 이상이 2만648명으로 전체의 38%를 차지한다. 강화군 전체 면적의 82%는 농경지와 임야다. 고령자 어르신들이 대부분 농사를 짓는다.
강화군에 따르면 2022년 현재 군내 농가는 6,153세대, 농가 1만2,257명이다. 이는 4년 전인 2018년의 6,542세대, 1만 4,931명보다 세대는 389세대, 인구는 2,674명이 감소했다. 이런 감소세는 더 급격해지고 있다.
강화의 농민이 고령화하고 1인 세대가 급증하고 있다. 어르신 가구의 소득을 추정해 보면 통계청의 연 1,000만 원은커녕 500만 원도 안 되는 가구가 태반일 것으로 보인다. 통계청도 1인 가구를 제외한 농업인 소득을 추산했으니 말이다.
정부는 여러 대책을 추진 중이다. 중요한 것은 농사지을 사람이다. 청년 농과 외국 인력 등 농촌 유입 인구를 늘릴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농촌 주민의 삶의 질을 높여 누구든지 살고 싶고 오고 싶은 곳으로 만드는 일은 전국 방방곡곡의 농촌이든 강화든 같다.
교육·의료·문화·복지·일자리를 비롯한 생활과 정주 여건을 개선하지 않으면 ‘농촌 소멸시계’를 멈출 수 없다. 온 마을에 사람이 넘쳐나고 작목반을 만들어 모내기 하던 그 시절엔 ‘농촌 성장시계’가 돌아갔다. 모내기 철에 무자위를 돌리던 어르신의 모습이 그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