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사퇴안건이 처리된 이종구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 (사진 출처=인천문화통신 3.0)

 

(뉴스통신=배영수 기자) 그간 인천시로부터 ‘사실상의 사퇴 압박’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이종구 인천문화재단(이하 재단) 대표이사가 결국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중도 사퇴했다. 

예술계는 이 대표이사가 전임 정부 시절 선임된 인사라는 점 때문에 현 유정복 시정부가 이 대표이사에게 압력을 행사했다고 보고 사실상 재단조직을 정치적 목적으로 장악하려는 의도가 있다며 유 시장에게 비판의 날을 세우고 있다.

27일 재단에 따르면 재단은 이날 정기이사회에서 이 대표이사가 사퇴의사를 공식 표명해 사퇴 안건을 처리함에 따라 지난해 2월 임기가 시작된 이 대표이사가 1년 10개월여 만에 대표직을 내려놓게 됐다.

이 대표가 지역사회에서 대표이사직에 대한 사임 의사를 외부 등에 밝힌 건 ‘표면적’으로는 이달 초쯤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예술계의 몇몇 인사들이 전한 바에 따르면 이 대표이사는 민선 8기의 유정복 시정부가 출범한 뒤로 인천시로부터 지속적으로 사퇴 압박을 받아왔다는 것인데 실제 올해 시가 산하기관을 대상으로 복무감사를 시작하면서 이 대표이사의 근무시간 등에 대해 지적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재단 관계자들에 따르면 2004년 재단 출범 후 대표이사의 근무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를 지키는 것을 관행화해왔다고 한다. 문화행사가 주로 야간과 주말에 벌어지기 때문에 대표이사 역시 이에 따른 근무로 몸살을 앓다보니 평일 근무를 조금이나마 고려해 지금까지 이어왔다는 것이다.

이 대표이사 역시 통상적으로는 이 관행에 따라 근무를 해왔는데 지금까지 이걸로 문제를 삼은 적이 없었던 인천시가 지난 7월 경 이 대표이사에게 ‘근무시간 미준수’를 지적했다는 것이다.

현 인천시 규정에 따르면 재단의 대표이사에게 내릴 수 있는 ‘사실상의 징계’는 해임이 유일한 상황이다. 이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실제 이 대표이사는 7월 경 인천시 측 관계자와 만난 자리에서 사직서를 내는 게 어떻겠느냐는 권유를 받고 이미 당시 한 차례 사직서도 제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최근 유 시장의 측근 인사들 몇몇이 이 대표이사와 재차 만나 또다시 근무시간 문제를 거론하면서 연말 정도에 자리를 정리하는 게 어떻느냐는 권유까지 있었고 그간 여러 경로로 압박을 느꼈던 이 대표이사가 그 이후엔 ‘심적’으로도 사퇴결심을 굳혔다는 것이다.

이 대표이사는 평소 재단 직원 및 측근 인사들에게 자신이 소속됐던 예술단체(정황 상 민예총 등으로 추정됨)나 정치정당의 ‘결’과는 상관없이 임기는 무조건 채운다는 신념을 보인 바가 있었다.

최근에도 한 지역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진영과 세대 등 대립이 없도록 균형을 잡고 지역 예술계가 풍부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언급했을 정도로 의지를 밝혀왔었다.

그러나 이달 들어 사퇴 결심을 굳힌 후엔 “이젠 주변 정황 상 현 시 집행부와 더 잘 맞는 사람에게 자리를 내 주는 것이 좋겠다”는 뜻을 밝히는 등 심경의 변화를 자신의 측근 등에게는 비공식적으로 표명해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예술계는 유 시장이 ‘뭔가 단단히 착각을 하고 있다’는 비판의 시선이 중론이다. 이 대표이사가 전임 박남춘 시정부 시절 선임된 인물이지만 그간 2019년 가동했던 재단 혁신위원회를 통해 가동된 추천위원회 시스템을 통해 고득점자로 평가받아 선임됐다는 점을 현 유정복 시정부가 간과하고 있다는 의견이다.

당시 재단 혁신위는 대표이사 선임과 관련한 추천위 구성에서 인천시장 추천 몫 2명을 없애고 이사회 추천 3명 및 인천시의회 추천 2명 몫을 줄이고 시민 몫 3명, 재단 직원 추천 몫 2명을 더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으며 사실상 인천시장의 ‘입김’을 원천 차단한 바 있다.

이는 재단의 독립성과 자율성, 전문성 등을 위한 당시 혁신위의 조치 일환이었는데 이 대표이사는 이를 토대로 선임된 인사다.

따라서 따져보면 그가 박남춘 시정부의 ‘코드 인사’라고 볼 수 없음에도 유정복 시정부가 재단조직을 장악하고자 하는 의도로 제멋대로 식의 해석을 해버렸다는 것이 지역 예술계의 비판이다.

실제로 이 대표이사의 사퇴설이 파다했던 16일 15여개 시민 및 예술단체들은 공동으로 성명을 내고 유정복 시장을 향해 “재단의 장악 시도를 당장 중단하라”고 일갈하는 한편 이 대표이사에겐 “사의 표명을 거두고 끝까지 자리를 지켜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재단 대표이사 임명 및 임기 유지 권한이 마치 자신에게 있다고 착각해 전임 시장 때 임명된 ‘자기 진영 인사’가 아니라는 이유로 내치는 유 시장의 행태는, ‘지역 문화예술 주체들이 힘들게 확보한 재단의 독립성을 해치는 권위주의적이며 퇴행적 사고’라는 입장이다.

특히 이 공동성명에는 인천아트플랫폼의 14기 레지던시 입주작가들이 함께 이름을 올렸는데 최근 유정복 시정부가 인천아트플랫폼의 개편을 명목으로 레지던시 공간 등을 없애는 절차를 진행중인 것이 알려지면서 이들 작가들 역시 유 시장을 비판하는 세력으로 힘을 보탠 점도 눈에 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한 지역 작가는 “이 대표이사가 취임 전까지 인천지역에서도 대표적인 민중작가로 활동해왔지만 취임 후 자신이 임기 3년 동안은 작품활동을 하지 않고 재단 조직이 독립적으로 이원화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는 평가가 있는데 전임 시정부 시절 선임됐다는 그 이유 하나로 시 행정부의 사퇴 등 압박을 받은 것 같다”고 밝혔다.

이 작가는 “단순히 그의 사퇴가 안타깝다기보다는 앞으로도 시장이나 시 집행부가 자신들의 입맛에 따라 대표이사를 바꾸고 하는 부적절한 행정들을 반복할 수 있는, 대단히 좋지 않은 선례를 남겼다는 것이 더욱 씁쓸하다”며 “앞으로도 지역 예술이 정치에 휘둘리는 상황이 계속 생기지 않겠느냐”고 성토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