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통신=배영수 기자)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전세사기 피해에 대해 정부와 인천시가 경매일시 중단 대책에 나섰지만 피해자들의 체감할 수준의 실효성으로 결론이 될 지는 아직 미지수다.
무엇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시한 ‘경매중단’ 요구가 여러 복합적인 이유로 쉽지만은 않다는 점을 감안해 정부가 소위 ‘액션’만을 취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19일 정부와 인천시 등에 따르면 정부는 18일 윤석열 대통령이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으로부터 전세사기 피해 현황 등을 보고받은 후 피해세대에 대한 경매 일정의 중단 및 유예 방안을 실행하라는 ‘긴급 지시’를 한 상태다.
이어 19일 인천시는 유정복 시장이 언론브리핑을 통해 전세사기 피해 추가지원방안을 발표했다.
주요 내용만을 언급하자만 피해확인서를 발부받은 피해자 중 연소득 7천만 원 이하는 전세보증금 대출이자를 2년간 전액 지원하고 피해자 중 만 18~39세 이하의 청년 세대가 월세를 원할 경우 1년동안 월 40만 원씩을 지원해 주기로 했다.
이어 긴급주거지원을 신청해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하는 피해 세대에는 가구당 150만 원의 이사비를 지원하고 피해자 중 인천에 사업장을 둔 소상공인에게는 업체당 3천만 원 이내에서 5년 기한 융자(3년간 연 1.5%의 이자 차액을 보전)를 지원하는 등 시비를 상당수 투입하는 내용으로 구성됐다.
다만 정부와 인천시의 피해지원 내용은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는 지적이 많다. 우선 인천시의 추가지원 방안은 ‘지방정부 역량’인 만큼 그 한계가 너무 명확하다. 상당한 시비를 투입하겠다고 피력했지만 피해자들에게는 그리 크게 도움될 체감 정도는 아니라는 의견이 많다.
인천시도 이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시 관계자는 “피해자들이 중점적으로 요구하는 부분은 경·공매 중지와 최우선변제금 적용 시점 변경 등인데 이는 법령 제·개정 등이 필요해 시 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하기엔 한계가 명확했다”며 부족함을 인정했다.
때문에 인천시는 추가대책을 준비하는 과정 중 유 시장이 윤 대통령에게 경·공매 중지 등 대안과 관련해 정부 차원의 대승적인 지시를 촉구한 바가 있었다고 밝혔다.
이 같은 의견들을 전달받은 윤 대통령은 앞서 언급대로 18일 경매중단 등의 조치를 국토부에 지시한 상태다. 하지만 이 역시 근본해결책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대체로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우선 공매와 관련해서는 공공기관인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권한을 가진 51건의 공매는 대통령 지시로 경매기일 변경 등을 할 수 있는 범위에 해당돼 문제는 없다. 그러나 은행 등 금융기관이 떠안고 있는 경매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공매’는 선순위가 ‘조세채권’에 해당되는 만큼 채권자는 ‘정부’다. 그러나 건축왕 등이 저지른 대규모 조직사기사건은 채권자가 ‘민간은행’이며 이들은 ‘재산권’이라는 대통령 권한 바깥의 권리를 갖고 있다. ‘대통령 지시’라는 이유로 중단하기가 쉽지만은 않은 이유다.
만약 대통령 지시로 경매를 중단한다면 중단 기간동안 해당 매물은 금융기관이 떠안고 있는 상황이 되는데 사실상 금융기관들이 일종의 ‘폭탄 떠안기’를 하는 셈이 되는 만큼 이들 기관의 자금 유동 등에 큰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존재하게 된다.
물론 금융감독원이 윤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전달받은 이후 즉시 은행연합회, 5대 시중은행 등과 비공식적으로 면담을 갖고 피해주택의 경매일정 중단 등 방법을 강구하고 나섰다지만 금융기관들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다.
만약 이 때문에 시중은행들이 자금사정이 어려움을 겪을 경우 전세대출에 제한을 거는 등의 조치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데 그렇게 되면 안 그래도 하락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전세시장이 더 위축되는 등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현재 전세사기 피해는 미추홀구뿐만 아니라 인천 전역을 넘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그런데 미추홀구로만 한정해도 피해자들의 전세보증금 피해액수는 2,500억 원 정도 규모로 추산되는 형국이다.
그러자 일각에서는 정부가 나서서 채권을 가진 금융기관의 부실 위험을 모두 떠안는다는 약속을 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지만 정부 차원에서 이를 결정한다는 것도 쉬운 문제가 아니다.
일각에서는 민간영역의 피해를 공공재원으로 메운다는 점 때문에 형평성 등의 차원에서 여러 문제들을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윤 대통령의 지시는 경·공매 중단(약 6개월여 기한)이 중점적인 사항이지만 일각에서는 ‘사실상 시간끌기’가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 기한 동안 피해자들이 나름대로 대책을 마련해 출구전략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은데다 정부 차원에서는 ‘경매중단’ 이상의 특단의 대책이 나오진 않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정부는 피해자가 가능한 경우 해당 주택을 우선매수할 수 있게 해주고 채무를 일부 조정해주거나 정부가 피해주택을 직접 매입하는 것도 검토사항에는 포함하고 있는 상태다.
그러나 전국의 모든 전세사기 피해를 공공재정으로 충당해준다면 형평성, 그리고 현 채권추심제도를 뒤흔들 수 있다는 우려 등이 존재하는 만큼 정부 차원에서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절대 아니다.
다만 전국적인 여론 전반은 이같은 우려(채권추심제, 형평성 등)를 당분간은 후순위로 두고 시급한 내용부터 먼저 정리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긴 하다. 그러나 정부 차원에서는 아무리 여론이 그렇게 조성됐다 해도 실천하기엔 어려움이 생길 수밖에 없다.
미추홀구에만 최소 2,500억 원 이상의 피해액수가 추산되는 상황에서 전국 전세사기를 모두 공공재원으로 메우는 것이 과연 가능하냐는 것이다. 물론 다른 측면에서 ‘정서상 사회문제’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
일부 정치권과 지역사회 일원들은 경·공매를 지금에서야 중단하라고 얘기하는 것도 늦었다는 의견이 많다. 전세사기가 본격적으로 보도되기 시작했던 시점은 지난해 7월부터 9월 경이었고 이후 더 많은 매체가 다뤄지며 수면 위로 부상했기 때문.
인천시의회 내에서도 일부 시의원들 가운데서는 지난해 하반기 여름시즌 정도서부터는 조치가 검토됐어야 했다는 의견이 나온다.
대통령이 지시한 경매중단 등의 내용이 법과 정부 권한의 테두리 범위 안에만 있는 게 아닌 만큼 과연 가능한지, 또 가능하다면 어떻게 추진해야 하는 지를 충분히 점검할 수 있는 시간이라도 벌 수 있었다는 논리다.
한편 인천시에 따르면 현재 인천지역에는 전세 사기 피해와 관련해 속칭 ‘건축왕’, ‘빌라왕’ 등이 소유한 주택이 미추홀구를 중심으로 3,008호가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전세 피해 실태조사는 현재도 진행 중으로 인천시는 이달 중 조사를 마칠 예정이다.
인천시 관계자는 “현재 긴급 주거지원은 4월 17일 기준으로 총 38세대가 신청해 11세대가 입주를 마쳤고, 27세대는 입주 대기 중”이라며 “물론 긴급 주거지원은 신청하면 모두 입주가 가능하나 피해자 대부분은 긴급 금융지원을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