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어린 시절만 해도 사실 인성교육이란 것이 따로 없었다. 더운 여름날이면 이웃끼리 마당에 모여 앉아 수박과 옥수수를 나눠 먹으며 동네 아이들이 형제자매가 돼 골목을 누비며 뛰어놀았다.
이렇듯 우리는 알게 모르게 다른 사람과 어울리고 배려하고 용서하는 법, 즉 함께 살아가는 법을 자연스레 배울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웃에 누가 사는지도 모를 뿐만 아니라 이웃 간의 작은 갈등이 살인으로까지 이어지는 무서운 세상으로 변했다.
부모들은 내 자식만 잘하면 된다고 가르치니 우리 아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어울리는 기회를 잃어버린 것과 다름없다. 우리 아이들이 과연 어른이 돼 사회에 나가서도 혼자서만 잘하면 잘 살 수 있을까?
아이가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에서 지낼 때 가장 염려되는 건 바로 또래 친구들과의 관계일 것이다. 집단 따돌림으로 인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아이들을 뉴스에서 볼 때마다 우리 아이는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지 괴롭힘을 당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
하지만 우리 아이가 또래 친구들과 잘 지내길 바라지만 어떻게 하면 잘 지낼 수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는다. 그저 ‘사이좋게 지내라’, ‘양보해라’는 부모의 말을 잘 실천하면 친구들과 잘 지낼 수 있는 걸까?
하버드 대학에서 1938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72년간 종단연구를 한 ‘그랜트 연구’는 인간관계가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행복한 삶’에 일정한 공식이 있는지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한 이 연구의 결과는 이렇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행복의 열쇠는 사람과의 관계이다.’
그렇다면 우리 아이들이 어떻게 하면 이 행복의 열쇠를 가질 수 있을까?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게 할 수 있는 행복의 열쇠는 ‘감정과 공감’이다. 감정은 ‘내’가 느끼는 것이지만 공감하게 될 때 ‘우리’의 것이 되기도 한다. 함께 살아가고 있는 가족, 친구, 이웃과 내 감정을 나누고 그들의 감정을 공감함으로써 우리는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제일 먼저 내 감정이 어떠한지를 알아야 하고 그다음으로 사람들과 긍정적인 관계를 맺기 위해 상대방의 감정도 헤아릴 줄 아는 능력이 필요하다. 내가 슬플 때 모른 체 하고 있는 사람보다는 나를 위로하고 괜찮은지 물어봐주는 사람에게 더 호감을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인간의 일들을 인공지능이 대신 하게 될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고유한 능력, 즉 ‘공감 능력’을 아이에게 길러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고 값진 일일 것이다. 자신의 감정을 알고 조절할 줄 알며 타인의 마음을 공감하고 그에 맞게 행동하는 능력은 앞으로 우리 아이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가장 큰 무기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감정, 공감은 누구에게나 자연스럽게 길러지는 것이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감정을 헤아림 받았거나 공감을 받아본 아이만이 길러지는 것이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바른 행동’과 ‘착한 행동’이 무엇인지 배워왔지만 그대로 행동하지 않을 때가 많다. 우리가 알고는 있지만 실천으로 옮기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바로 머리로만 배웠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학생들의 도덕 점수는 세계 3위이지만 협동 점수는 최하위다. 즉 머리로는 옳은 행동이 무엇인지,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는 것이다. 주입식으로 인성 행동을 아무리 가르쳐봤자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행동’으로 실천하게 하는 에너지가 바로 ‘감정’이다. 주입식으로 인성을 배운 아이들은 책에 나온 상황에 대해서만 인지하고 행동할 수 있지만 감정을 통해 인성을 배운 아이들은 자신에게 놓인 상황에 대해 감정을 먼저 느끼고 상대방에게 공감하며 행동하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든 자신의 감정을 바탕으로 행동하게 된다.
우리 아이들이 다른 사람들과 긍정적인 관계를 맺고 그 사람들 안에서 따뜻한 감정을 주고받으며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감정과 공감을 가르쳐 주시길 바란다. (임은주 한국감정연구소장/휴나에듀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