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통신=배영수 기자) 상당한 행정력을 집중시켰음에도 유치에 실패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의 결과에 유정복 인천시장이 수용할 수 없다며 재논의를 촉구했다.
그러나 정부의 결정이 ‘잠정적 단계’이긴 하나 이미 대외적으로 공식 발표된 상황인 데다 인천 역시 민생영역에서 여러 부족한 상황들이 드러나고 있는 점 등을 감안하면 유 시장이 ‘떠나간 배에 대한 미련’을 굳이 보일 필요가 있었냐는 의견도 만만찮게 나온다.
유 시장은 21일 인천시청 브리핑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내년 열리는 APEC 개최지를 경북 경주로 결정한 데에 유감이며 절대 수용할 수 없고 재논의해야 한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앞서 외교부는 20일 열린 제4차 APEC 정상회의 개최도시 선정위원회에서 최종적으로 경주시를 선정키로 의결했다고 밝혀온 바 있다. 그러자 유 시장은 선정위의 이러한 결정이 당초 발표한 평가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반발하고 있다.
외교부의 개최도시 공모 관련 공고문에서 정한 기준에 경주시가 부족함이 있었던 반면 인천시는 부족한 부분이 없었음에도 다른 결정이 내려졌다는 주장이다.
당시 공고문에는 공고일 기준으로 ▲개최 목적 및 기본계획 우수성 ▲도시여건의 국제회의 부합 여부 ▲정상회의 운영 여건 ▲국가 및 지역발전 기여도 항목으로 개최도시 여부를 평가하며 모호한 표현을 성과로 부풀리는 등의 내용은 불가능하다고 간주하는 등의 적시사항이 있었다.
인천시 내부에서는 이러한 기준을 감안해 경주보다는 여건이 나을 것으로 판단했으나 선정위는 ‘경주가 국가 및 지역발전기여도, 문화관광자원 등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밝혀옴에 따라 반발이 어느정도는 예상됐었다.
인천시는 경주시의 경우 공모기준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했던 주요 회의장 배치 안을 당초 유치신청서와 다르게 변경하고 개최지역 범위를 신청 지역인 경북을 벗어나 타 시·도까지 임의 확대키로 수정했다고 밝혔다.
이어 경주시에는 21개 회원국 정상들이 머물 5성급 호텔과 프레지덴셜 스위트룸이 2개소 2객실이고 만찬장으로 제안한 월정교는 협소한 목조건물이라 최대 1천여 명을 수용하기에는 턱없이 부적합하다는 전문가의 의견도 있었다는 것.
시는 이에 따라 경주시의 이런 행보가 명백한 공모기준 위반임에도 선정위가 면밀하고 객관적인 검토 없이 표결을 진행한 게 아니냐며 공정성에 의문이 든다는 입장이다.
유 시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번 결정은) 마치 수능 만점자를 탈락시킨 것과 같은 참 나쁜 결정인 만큼 APEC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조만간 외교부 장관을 만나 신중하고도 현명한 결정을 촉구하겠다”며 사실상 재논의를 요청하겠다는 입장도 함께 밝혔다.
그러나 유 시장이 기자회견까지 자청해 이러한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히는 게 ‘큰 의미가 있겠냐’는 비판이 지역사회 차원에서는 만만찮게 나온다.
유 시장이 반발하며 재논의를 요구했다고 외교부가 이미 대외적으로 공개한 결정을 번복할 가능성은 냉정히 말해 사실상 거의 없기 때문.

실례로 인천시와 이번 APEC 유치전 경쟁을 벌였던 제주특별자치도의 경우 선정위의 결정 직후 오영훈 제주지사가 유 시장과 마찬가지로 기자회견을 열고 외교부에 상당한 수위의 불만을 드러내긴 했었다.
하지만 오 지사는 “우리 시는 아쉬움을 뒤로 하겠다, 경주시에 축하를 전한다”며 “유치전을 벌였던 지방정부들이 대한민국 발전과 국민의 행복을 위해 함께 동반자로서 노력하자”며 사실상 이의 제기를 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오 지사는 기자회견 직후 기자들의 질문도 받지 않고 자리를 뜨는 등 외교부를 향해 상당히 불편하다는 듯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긴 했지만 이미 외교부가 내린 결정이 대외적으로도 공개된 만큼 이 결정은 바뀔 가능성이 사실상 희박하다는 것을 현실적으로 직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 제주도의 경우 제2공항 건립문제 등을 비롯해 정부와 협의할 현안들이 많고 윤석열 대통령이 제주에서 조만간 민생토론회를 예정하고 있다는 점 등도 오 지사가 그 이상의 반발은 하지 않고 있는 배경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따라서 유 시장 역시 ‘바꾸기 힘든 결정’에 대한 불복 및 재논의 등을 요구하기 보다는 자신의 핵심공약이 현재까지 지역사회의 신뢰를 주지 못하는 현 상황과 민생 문제의 시급함 등을 위해 역량을 집중하라는 의견들도 만만찮다.
한 시민사회 활동가는 “유 시장 본인이 핵심공약이라고 밀어붙였던 뉴홍콩시티 프로젝트를 예로 들면 최근 ‘글로벌톱텐시티’로 이름을 바꾸면서 그 과정에서 이해할 수 없는 행보를 보이며 애먼 예산을 낭비하는 등 정황을 보며 지역사회가 신뢰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본인의 핵심 공약 등에 대한 시민 신뢰도를 끌어올리고 예산 문제 등으로 잘 살피지 못하고 있는 복지와 교육 영역의 시급한 현안도 다시 살펴봐야 한다”며 “거창한 타이틀에 집착하는 모습은 더 이상 보여서는 곤란하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실제 이 활동가의 지적은 최근 인천시의회에서도 최소 한 번 이상은 이야기가 나온 사항들이기도 하다. 특히 뉴홍콩시티 프로젝트는 이름이 바뀌기 전 사용된 홍보 및 행사성 예산만 해도 수억 단위 규모라 사실상 ‘날려먹은 혈세’라는 비판이 꾸준한 상태.
지난해 사용된 관련 예산이 2억 4천만 원인데 세부내용은 홍보추진 5천만 원, 민관추진협의체발대식 5천만 원, 뉴홍콩시티 조성 초청행사 1억 4천만 원 등이었다.
그리고 올해 비슷한 내용으로 1억 원(홍보추진 3천만 원, 대시민 발표회 3천만 원, 민관추진협의체 4천만 원 등)이 쓰였다.
결국 2년 동안 3억 4천만 원을 쓰는 등 행보를 보였다가 프로젝트의 이름을 바꾼 것으로 이에 대한 비판은 이미 인천시의회 및 시민사회진영 등에서 지금도 자자하게 흘러나오고 있는 상황.
최근 시의회 건설교통위원회에서도 김명주 시의원(서구6)이 “2년 동안 눈에 띄는 성과는 없고 다른 국에 비해 행사에 관련된 예산 지출만 많았다”며 “시장의 정치적 행보에 의해 성과가 없는 상황에서 축포만 터뜨려서는 안 된다”고 대놓고 지적하기도 했다.
또 유 시장이 추진하고 있는 F1 개최와 관련해서도 시의회에 용역에만 5억 원대의 예산을 들고 온 것에 대해서도 ‘인천시가 시급한 문제들을 너무 뒷전에 두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시의회 내에서 나왔다.
당시 시의회 문화복지위원회 소속 유경희 시의원(부평2)은 “안 그래도 (중앙정부 및 시의) 재정 악화로 인해 특히 복지와 교육현장 영역에서 예산상 어려움이 많은데 (용역비만 5억이나 들여) 정작 이런 계획을 추진하겠다는 시는 추진의 필요성 등을 의회에 소상히 설명하지 않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또 아직까지 해결이 요원한 전세사기 문제와 관련해서도 김대영 시의원(비례) 등이 적극적인 자세를 주문하고 있으나 인천시는 ‘보조적 역할’만을 강조하며 공과금을 운운하는 등 박약한 의지만을 보이고 있는 등 민생문제 전반에서도 부족한 자세를 보이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결국 지역사회 전반의 의견은 유 시장이 정치인으로서 구미가 당길 수 있는 거창한 타이틀에 과도하게 집착하기보다는 가장 시급한 민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행보를 우선적으로 보이라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