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수 기자
(뉴스통신=배영수 기자) 13일 공정거래위원회가 국내 전자상거래 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는 플랫폼 기업 ‘쿠팡’에 1,400억 원대 과징금 및 법인 검찰고발 등 제법 수위 높은 처분을 내렸다.
공정위가 지난해부터 쿠팡에 대한 불공정거래 여부 등을 조사한 결과 자신들의 PB상품 판매규모를 늘리기 위한 목적으로 구매후기 및 별점, 검색순위 알고리즘 등 일부를 조작한 것을 적발했기 때문.
공정위에 따르면 쿠팡에 대한 조사기준 시점은 지난해 7월 이후였다. 여러 시정사항들이 그간 쿠팡에 전달됐을 것은 물론이나, 공정위는 쿠팡이 이를 전혀 시정하지 않았으며 과징금 처분의 범위는 무려 지난 2019년부터 54개월여 간 쿠팡이 행한 행위의 불공정함에 대한 것이라 밝혔다.
공정위가 밝힌 쿠팡의 불공정행위는 그 범위도 넓었다. ‘검색 알고리즘 조작’의 방법으로 쿠팡 랭킹 상위에 고정 노출했다는 자사 PB 상품이 무려 6만 4천개가 넘었다고 한다.
쿠팡은 이들 상품에 평점(순위점수 등)을 더 얹고 실제 검색결과와 다르게 순위를 바꾸고 이와 관련해 리베이트(뒷돈 거래)도 이뤄졌다는 게 공정위 측 설명. 여기에 앞서 언급대로 쿠팡이 시정을 하지 않은 점 등을 감안하면 향후 과징금의 규모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정도면 쿠팡이 공정위의 시정명령을 받아들이고 고객들을 상대로 겸손히 사과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게 상식이었겠지만 쿠팡의 대응은 그 상식을 깡그리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불공정거래를 지적한 공정위에 대해 “‘상품 추천(진열)’을 문제 삼아 지난해 국내 500대 기업 과징금 총액의 절반을 훌쩍 넘는 과도한 과징금과 형사고발 처분을 한 공정위의 결정은 전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형평성을 잃은 조치”라며 행정소송을 취하겠다고 밝혔고 고객에 대해서는 자신들의 행위를 ‘상품 추천’이라고 규정하면서 “만약 공정위가 이를 모두 금지하면 우리나라에서 로켓배송 등 서비스가 어려워질 것”이라며 사실상 고객을 상대로 ‘엄포’를 놓기도 했다.
쿠팡의 태도는 여러 가지로 문제가 심각하다. 소위 ‘관’에 해당되는 공정위와 싸우겠다는 의지도 문제지만 그를 넘어 ‘민’에 해당되는 고객에 대해 겁박 비슷한 자세를 취하며 ‘아득히 선 넘은’ 자세를 보였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일 듯싶다.
시선에 따라서는 ‘우리의 로켓배송 서비스를 계속 받고 싶으면 우리 편에 서라’며 고객을 상대로 일종의 ‘가스라이팅’ 비슷한 행위를 시전했다고 볼 수도 있는 만큼 전자상거래의 ‘도의’마저 저버린 것으로 규정해도 과하지 않다.
기자는 쿠팡이 공정위는 물론 고객에게까지 겁박과 비슷한 식의 자세를 보인 데에는 몇 가지 배경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자신들이 기록 중인 전자상거래 랭킹 1위가 보이는 자만심도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그보다는 ‘관’의 영역에서 일종의 ‘징벌’을 받고 그에 대해 반발을 해도 고객이 자신들의 플랫폼을 이용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일종의 ‘으름장’이 보다 우선일 것으로 여겨진다. 쿠팡이 왜 이런 으름장이 가능했을까? 여러 배경이 있겠지만 기자는 정부의 ‘해외직구 규제’ 정책이 결정적이었으리라 생각한다.
그간 참여정부나 문재인 정부 등 중도 성향의 정권이 고소득자 세율 부담을 늘리기 위해 도입한 경제정책들(종합부동산세, 법인세 인상)이 발표됐을 당시, 그 정권을 싫어했던 보수세력 및 보수 언론사들은 ‘대한민국은 자유시장경제의 국가’라는 문장을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해 왔다. ‘고소득자라서 세금 부담을 늘리는 것은 자유시장경제에 맞지 않는다’는 것.
그런데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그간의 보수진영이 이 자유시장경제를 자신들의 당리당략에 따라 ‘선택 적용’을 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 그도 그럴 것이 자유시장경제의 논리는 ‘소비의 영역’에도 그대로 적용되기 때문이다.
국민 개인이 ‘어디가 됐던 자유롭게 상품을 선택하고 판매자를 골라 구입할 수 있는 권리’는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기본권인 동시에 ‘보수진영’이 그렇게 강조하고 좋아한다는 자유시장경제의 ‘기본논리’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대한민국의 현 자유시장경제는 ‘보수정권’인 윤석열 정부에 의해 무너지고 있는 실정이다. 자유시장경제를 목 놓아 부르는 그 ‘보수’에 의해 말이다.
그간 국내 전자상거래 시장에서는 고객을 대상으로 원산지 및 제조국 등을 속이거나 ‘택갈이’ 등 여러 부적절한 행위들로 ‘민낯’을 드러내며 지속적인 비판을 받아왔다. 결국 ‘가격과 양’으로 도전한 중국 등 해외 전자상거래 플랫폼(알리익스프레스, 테무, 아마존 등)에 완벽히 밀렸다.
물론 그들 역시 비슷한 속임수로 고객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사례가 다분히 있긴 하나 낮은 가격에 속는 게 비싼 가격에 속는 것보다 ‘물질적 손해’는 물론 ‘정신적 손해’까지 덜하다는 건 세 살 아이도 알 만한 기본상식일 터. 결국 해외의 플랫폼이 ‘가격이 싸다’는 이유만으로 국내의 시장을 잠식한 게 아니라 사실상 국내 소비자들에게 믿음을 주지 못한 국내 플랫폼이 ‘자초’한 것이 아니냐는 게 기자의 판단이다.
단적으로 같은 성능을 가졌어도 저렴한 중국 제품보다 몇 배는 월등히 비싼 애플과 삼성이 국내시장을 양분중인 스마트폰 시장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나. 신뢰만 굳건했다면 단지 ‘가격을 후려쳤다’는 이유로 이렇게까지 밀리진 않았을 거란 얘기다.
그런데 현 정부는 그러한 민낯은 제대로 보지도 않은 채 ‘국내시장 보호’라는 명목으로 직구 규제를 강행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규제가 정작 보호가 필요한 소상공인에 도움은 전혀 안 되면서 (소상공인들에게 상당한 수수료를 챙기는 구조로) 굳이 정부가 도와줄 이유가 없는 쿠팡 등 대기업 플랫폼을 보호하자고 나서는 꼴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비단 보호받지 못하는 주체가 소상공인들 뿐일까? 당연히 아니다. 보호를 못받는 건 소비자, 즉 ‘모든 국민’들이 포함된다. 가격이 저렴한 시장이 있는데 정부가 못 들어가게 해서 비싼 다른 시장에서 억지로 사야 하면 그게 정부가 국민을 보호하고 있는 것인가? 이는 안 그래도 불경기에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소비행위를 해야 하는 국민들의 선택권조차 정부가 강제로 막아버린 것이며 더 나아가 민주주의 국가에서 사실상 ‘하지 말아야 하는 정책’이다.
실제로 이렇게 해외직구를 강하게 막는 나라는 전 세계를 통틀어 북한이 거의 유일하다고 한다. 북한이 싫다며 자유시장경제에 대해 ‘아주 노래를 불러댔던’ 보수정권이, ‘국내 대기업 플랫폼 보호’를 이유로 정작 북한과 닮아간다? 절대 안 되는 행위다.
‘랭킹 1위’인 쿠팡으로서는 정부가 저렇게까지 나서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규제를 강행하겠다고 나섰다면, 내부에서 당연히 분위기가 고무됐을 것이다. 여기에 자신들이 ‘배째라’ 식의 자세를 보여도 어쩔 수 없을 거라는 ‘자만’ 같은 것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결국 쿠팡의 ‘공기관은 물론 고객까지 우습게 볼만한 배경’은 사실상 정부가 꾸려준 셈이 된다.
쿠팡의 ‘대고객 엄포’가 공지된 이후 참여연대 등 몇몇 시민단체에서 “쿠팡을 지적하고 징벌한 대상은 ‘그들의 서비스’가 아닌 ‘그들의 불공정행위’인데 이걸 지적했더니 가입고객을 협박하고 (직접적으로 문제를 삼지도 않은 서비스인) 로켓배송을 운운하며 ‘물타기’를 하고 있다”는 비판의 반응이 나왔지만 사실 이들 단체보다는 고객들의 즉각적인 반응이 더 일찍 나왔다.
시민들은 쿠팡에 대해 “자기들이 잘못해 놓고 왜 애먼 고객에게 엄포냐, 더러워서 안 쓴다”는 등으로 맞불을 놓았다. 그만큼 지금의 시기는 소위 ‘깨어있는 시민들’을 중심으로 부적절한 행태에는 적절함으로 대응하는 ‘집단지성’의 능력을 표출할 줄 아는 시대다. 여기에 쿠팡이 또 하나 망각하는 게 있다.
‘로켓배송’ 같은 식의 서비스는 자기들만이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거다. 쿠팡의 그 서비스는 네이버쇼핑의 장보기를 비롯해 여러 전자상거래 플랫폼이 운영 중인 당일배송 등 대안이 얼마든지 있다. 특히 최근 알리익스프레스에서도 국내 입점업체들을 중심으로 한국 고객 대상 당일배송 서비스가 운영되는 등 굳이 쿠팡의 로켓배송이 아니어도 누릴 수 있는 서비스들은 플랫폼마다 다양하다. 물론 쿠팡이 로켓프레시 등에 요구하는 월정액 결제 부담을 안 해도 여러 대안을 쉽게 찾을 수 있다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다.
사실 기자 역시 생활영역에서 ‘월정액’을 내는 쿠팡의 서비스를 끊고 산 지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적어도 기자의 생활반경에선 전혀 필요가 없었기 때문. 그런데 기자의 주변에서도 “월정액까지 내면서 그걸 굳이 왜 쓰냐”는 반응들이 있는 걸 보면 충분히 인증된 다른 대안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건 이제 ‘기정사실’이지 않을까 싶다.
기자는 이번 쿠팡의 대고객 엄포가 쿠팡의 민·관을 막론한 대중과 국민들에 대해 ‘불량한 자세’를 취했음은 물론 현 정부가 강행하려는 ‘직구 규제’의 필요성이나 방법 등이 여러 가지로 잘못됐다는 것까지 모두 ‘인증’했다는 판단이다. 따라서 살짝 눈치보기 하면서 사실상 강행하고 있는 직규 규제 추진은 지금이라도 전면 재고를 요구코자 한다.
쿠팡 스스로 ‘정부가 우리를 감싸지 않는다’고 판단한다면 저렇게까지 고객들 상대로 ‘생떼’를 부릴 시간에 해외 플랫폼과의 경쟁에서 생존하는 것을 고민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추가적으로 윤석열 정권이 자유시장경제를 선호하는 보수기반의 정권임을 자처한다면 적어도 북한과 닮은 모습을 보이지는 않길 바란다. 북한이 그렇게 싫다면서 왜 그리 악착같이 따라하려 드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