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호 도시계획학 박사
우리 인간 사회를 지칭하는 말은 다양하다. 어떤 의미, 어느 각도에서 접근하느냐에 따라 그때그때 표현이 달라지는 것이다. 필자는 우리 사회에 대해 ‘생물’이라는 표현을 곧잘 쓴다. 그만큼 변화무쌍하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우리 사회는 경제 성장의 둔화와 물가 상승이라는 두 가지 현상을 동시에 경험하고 있다. 쉽게 겪을 수 없는 일이니만큼 서민들이 느끼는 체감 경기는 상당히 민감할 테고 수준 또한 어려울 수밖에 없다.
2023년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률은 1.4%. 1997년 외환 유동성 위기(IMF)와 2010년 세계 금융위기(모기지 사태) 그리고 2020년 코로나(COVID-19) 발병 시기를 제외하면 역대 최저치의 성장률을 보인다.
반면 소비자물가 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3.1% 상승함으로써 실질 소득은 급격하게 감소하는 추세이다. 올해 역시 만만치 않다. 한국개발연구원(KDI)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2%, 한국은행은 2.1%로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제시했다.
서민 경제에 큰 부담이 되리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특히 저소득층에게는 심각한 경제적 위협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최근 3년간 물가 상승률은 13%인 반면 공무원들의 임금 인상률은 5.6%이다. 인플레이션을 고려하면 실질 임금 상승률은 -7.4%인 셈이다.
엥겔지수(가계 소비 지출 중에서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비율)는 높아지고 지니계수(불균등 지표)의 차는 커지게 마련이다. 이에 따라 소득의 양극화는 깊어질 수밖에 없고 경제적 불평등으로 인해 사회적 불안과 갈등의 골이 깊어져 결국 사회는 큰 혼란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이렇듯 고질적인 소득의 양극화 현상을 완화하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포용적 성장 (Inclusive Growth)’에 집중하고 있다. ‘포용적 성장(Inclusive Growth)’이란 기존의 경제 성장 중심에서 벗어나 사회 구성원의 삶의 질 향상, 사회의 다양한 불평등 문제 해소, 계층 간 형평성 있는 분배 등을 추구하는 복합적 개념이다.
소득과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장기적으로 성장을 악화시킨다는 점에서 포용적 성장의 강화는 본질적으로 친성장(pro-growth) 전략이라는 의미이다. ‘포용적 성장’, ‘포용 도시’ 등의 이론과 개념 정의는 급격한 경제 성장이 느려지기 시작하던 1990년대 후반부터 부분적으로 나타났다.
점차로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세계은행(World Bank), 아시아개발은행(ADB), UN 등의 주요 국제기구들이 이에 관한 정책의제를 직접적으로 명시하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대두됐다. World Bank(2015)는 포용적 성장을 위한 정책 방향으로 사회적 포용, 경제적 포용, 공간적 포용을 강조했다.
ADB(2011)는 공간적 차원 측면에서 도시가 거주민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교통, 상수도, 폐기물 처리 등의 인프라적 개발 등을 제시했다. 또 UN-HabitatⅢ(2015)는 취약계층의 참여와 연대를 통해 도시 거버넌스의 민주적 절차 회복을 목적으로 포용 도시의 거버넌스 측면을 강조했다.
다양한 국제기구에서 관심을 두는 도시의 포용적 공간은 극단의 빈곤이 종식된 이후 도시의 번영을 공유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실천해야 할 과제이다. 이는 모든 사람에게 기회와 접근성을 균등하게 제공한다는 또 다른 의미이기도 하다.
접근성의 균등은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도시가 제공하는 서비스와 편리함을 공평하게 누리는 기회를 가진다는 의미이다. 나아가 도시공간의 생산 방식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함으로써 자신이 꿈꾸는 도시를 실현하는 데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도시사회를 의미한다.
포용 도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해결 과제들이 선행돼야 한다. 첫째, 경제적 불평등 해소를 위해 저소득층을 위한 사회 안전망 구축·최저임금 인상·임금 격차 해소를 위한 정책 수립, 둘째, 사회적 배제 방지를 위해 소외 계층에 대한 교육·의료·주거 지원 확대·차별 철폐를 위한 제도 수립이다.
셋째, 시민 참여 확대를 위해 시민들의 의견 수렴 및 정책 결정 과정에 대한 참여 기회 확대. 넷째, 공간적 포용을 위해 모든 시민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도시 공간 조성 특히 사회적 배려가 필요한 시민들에 대한 각별한 관심과 노력을 바탕으로 이뤄져야 한다.
다섯째,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환경 보호와 경제 성장을 동시에 추구하는 도시 개발의 시행. 이상으로 다섯 가지의 선행 과제를 살펴보았다. 이외에도 ‘포용’의 개념을 담은 논의들은 경제 성장과 인구 증가가 둔화되는 지금의 저성장 시대에 도시의 경제적·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해 나가는 해결책 중 하나로써 앞으로 더 활발히 논의될 필요는 충분하다.
포용 도시는 단순히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노력만으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협력이 있어야 비로소 가능해진다. 정부와 기업 그리고 시민사회가 똘똘 뭉쳐 협력함으로써 진정한 포용 도시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포용 도시가 양극화, 불평등 시대를 극복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필수적이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과제이다.
포용 도시는 단순한 이상이 아닌 우리 모두 함께 만들어야 할 현실이다. 시민, 정부, 기업, 시민사회가 협력해 포용 도시를 만든다면, 분명히 더 나은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다. 그러기에 남에게만 미룰 일이 아니다. 내가, 우리가 솔선수범해야 할 일이다. 내일이 아니라 지금 당장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