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제작됐다는 다큐멘터리 영화 ‘길위에 김대중’이 유료 관객 9만 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김 전 대통령의 생애가 지난해 말 개봉된 ‘서울의 봄’의 배경이었던 ‘12.12 군사반란’과도 관련이 있었던 만큼 1,300만 관객을 모은 ‘서울의 봄’ 흥행에 대한 일종의 ‘낙수효과’가 있다는 평가도 있었기에 기자 역시 인천의 ‘영화공간주안’에서 이 영화를 감상해 봤다.
사실 기자는 지금처럼 인천지역을 중심으로 취재기자를 하기 전에는 과거 영화전문지에도 몇 편의 글을 ‘프리랜서’ 자격으로 썼던 경험이 있었다. 그 경험으로 인해 영화인들과도 나름의 접점이 생겼고 그들로부터 배운 지식을 통해 영화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눈을 뜨게 됐는데 이번 영화의 경우 실제 사건을 다루는 다큐 영화인 만큼 ‘장식’ 혹은 소위 ‘조미료’가 있지는 않은지, ‘조금은 매섭게 보고자’ 했다.
영화 감상자로서 ‘간단한 리뷰’를 하자면 두 시간을 약간 넘는 영화는 배우 장현성의 나레이션을 제외한 모든 내용이 철저히 ‘증언’과 ‘사진’, ‘인증기록’으로 점철돼 있다. 장면들은 비교적 ‘롱 테이크’의 진행에 움직이지도 않는 사진의 비중이 높은데 사실 ‘빈말’로라도 9만이 볼 만한 내용과 구성이라고 보기는 좀 힘들다. 상업영화에 찌든 대부분의 대중들이 보기엔 ‘정말로 하품만 나올 재미없는 영화’일 뿐이다.
사실상, 9만의 관객은 ‘영화 자체의 전반적인 솔직함’이 어필한 결과였으리라 본다. 실제 관람자로서, 그것 말고는 딱히 떠오르는 배경이 없었다. 실제 기자는 이 영화를 보면서 “제작진들이 초기 단계서부터 ‘고증에 대한 상당한 자신감’이 있었겠구나”라고 느껴졌다. 한국의 역대 대통령들 가운데 민주주의 확립에 가장 큰 공헌을 했고 가장 큰 족적을 남긴 사람인 만큼, 굳이 장식이나 조미료가 없이 이 인물을 그냥 ‘냉철’하게 봐도 되겠다는 판단이 관객에게도 오롯이 전달됐기 때문.
영화는 1950년대 전남 목포의 해운업 청년사업가였던 김 전 대통령이 이승만 정권의 독재에 대한 반감으로 정치에 투신한 뒤 1987년 광주까지 향하는 파란만장한 삶 중 일부에 대해 조명한다. 특히 영화 내에서 언급된 많은 사건들에 대해 냉정히 봐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됐거나 한 부분이 거의 없었다는 점은 특기할 만한 사항이다. (물론 약간의 ‘미화’ 정도는 있었다.)
기자가 이번 ‘길위에 김대중’을 보고 또 이 영화가 예상보다도 많은 관객을 모으는 결과를 의미 있게 지켜보는 이유가 있다. 시민들께서 더 잘 알고 계실 일이겠지만 그간 역대 대통령들의 삶 일부를 ‘긍정적’으로 다룬 영화들 대부분은 흥행에서 ‘참패’했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전임 대통령들 다수가 국민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지 못했던 탓일 게다.
그런 분위기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 후 ‘아주 평범한 전임자’로 돌아갔음에도, 당시 정권의 노골적인 탄압에 결국 ‘희생자’가 된 뒤 생전의 그가 보인 ‘인간적인 면모’가 뒤늦게 사회에 스며들며 바뀌기 시작했다. 노 전 대통령이 생전 변호사 시절 변호에 나선 ‘부림사건’의 이야기를 영화화한 ‘변호인’은 노 전 대통령 자체가 ‘모티브’임이 뻔히 드러났음에도 천만을 넘어 대 히트했고 그가 대선후보가 되기까지의 험난한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그린 ‘노무현입니다’는 별다른 MSG 없이도 180만 관객을 모아냈다.
또 아직 기자가 관람하지 못한 ‘무현, 두 도시 이야기’도 19만이 모였고 바로 직전 정권에 해당되는 만큼 아직은 ‘재평가’가 좀 더 필요한 문재인 전 대통령 역시 그의 퇴임 이후 이야기를 그려낸 ‘문재인입니다’가 (공짜표 논란은 좀 있긴 했지만) 어쨌든 10만의 잔잔한 성공을 거뒀다고 한다. 김 전 대통령의 생애 일부를 모티브로 제작된 영화 ‘킹메이커’는 ‘흥행실패’로 귀결됐지만 그래도 78만의 적지만은 않은 관객을 붙들었다.
사실 정치인들을 긍정적으로 그리고자 하는 다큐멘터리는 어느 정도의 각색은 들어가기 마련이다. ‘변호인’이나 ‘킹메이커’는 인물의 이름을 바꾸면서 장식을 첨부하는 ‘픽션’을 전제하고 만들었으니 ‘각색된 작품’에 해당될 것이다. 그러나, 국민들은 그러한 각색의 결과를 절대 모르지 않는다. 그만큼 정치적, 문화적 눈높이가 상향됐기 때문이다.
반면 두 전직 대통령을 ‘실제로 등장시킨 심각한 다큐영화’들이 이렇게 예상 밖의 인기를 모으는 이유라면 소위 ‘블록버스터’ 만한 재미거리는 아무것도 없음에도 또 아무리 그들을 ‘긍정적’으로 다루고자 하는 의도가 있다 해도 사실을 왜곡하고 각색하는 결과가 나오지는 않았으며 이를 국민들이 제대로 보고 평가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중·고교시절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미국하고 다르게 존경할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어른들의 말을 듣고 살았던 기자는, 대한민국에서도 이렇게 굳이 심한 ‘각색’을 하지 않아도 ‘좋은, 혹은 괜찮은 대통령’으로서 평가받는 케이스가 나온다는 것에 나름의 반가움을 표명코자 한다.
앞으로도 이렇게 좋은 대통령들이 더 나온다면 정치적 성향을 떠나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반가울 일일 것이다. 그 반가울 일에 이제는 ‘한 번도 그 반가움을 주지 못했던’ 대한민국의 보수정권도 보탬이 됐으면 한다. 물론 당분간은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알기는 하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