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수 기자
(뉴스통신=배영수 기자) 세계스카우트연맹(WOSM)이 주최해 올해 부안군 새만금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 대회의 부실 운영이 연일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특히 언론이 계속 비판과 질타가 이어지고 참가자들이 SNS까지 동원해 문제점을 알려주는 등 ‘망신’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조직위원회는 언론의 취재 장소를 강제로 통제하는 등 상황을 연출하며 비판을 오히려 키우는 형국이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1일부터 시작된 제25회 세계 잼버리 대회는 총 170개국 5만여 명의 청소년(스카우트 대원) 및 행사 조직위 및 운영 요원 등이 참여한 가운데 진행되고 있으나 배수 및 폭염에 의한 부상자들이 속출하며 진행이 마구 꼬이고 있다.
가장 큰 문제라면 지난달 전국을 휩쓴 기록적인 폭우가 이 현장도 예외는 아니어서 대회 전에도 많은 비가 내렸는데 이곳이 간척지다 보니 배수 조치를 해도 효과를 거두지 못하면서 대회장 대부분이 물웅덩이 같이 변했다는 점이 크다.
때문에 조직위는 화물운송용 파렛트(물류 터미널 및 공장 등지에서 지게차가 한꺼번에 제품을 이동 시킬 수 있도록 깔아 놓는 플라스틱 소재의 깔판. 참고로 ‘파렛트’는 한국산업표준에서 정한 명칭임)를 준비해 텐트 설치 전 깔아 놓게 해 부지를 높이는 등 조치에 임했다.
그러나 습한 지역에서 올라오는 습기가 폭염과 함께 있어 온열 환자가 급증하고 있으며 습지 특성 상 모기 등 날 벌레로 인해 참가한 청소년들의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잼버리 시작 첫날부터 400명의 온열질환자를 포함해 807명의 환자가 발생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잼버리 대회에 대한 여론이 우려와 악화 분위기로 흘렀다. 그러자 소방당국은 조직위 측에 2일 개영식을 중단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조직위가 묵살한 것으로 알려지며 더욱 논란을 키웠다.
잼버리 현장에서 온열질환자들이 속출하자 소방당국은 이 때문에 2일부터 ‘소방 비상 대응 2단계’를 발령한 상태다. 이는 중형재난 수준의 재난에 대응하는 단계로 소방당국은 상황이 심각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현장에 참가했다는 한 청소년의 학부모는 “주변에 구급차가 수십 대가 있다는 아들의 이야기를 듣고 뉴스들을 챙겨보면서 2단계 대응 사실을 알게 됐다”며 “아들은 더위에 강한 체질이라 ‘모기 외엔 별 문제 없으니 걱정 말라’고 했지만 참가자가 다 내 아들 같은 체질은 아니지 않느냐”며 우려하기도 했다.
2일 개영식 때도 3시간 넘게 진행된 행사에서 더위 등을 이기지 못한 수십 명의 참가자가 쓰려져 응급 조치됐다는 것이 소방당국 측 설명이다. 이날 전북경찰청과 소방당국 등에 따르면 84명이 응급 조치를 받았는데 1명은 발목 골절을 입어 치료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소방당국의 중형대응과 마찬가지로, 경찰도 ‘갑호비상령’을 내려 부안군과 김제시, 고창군 등 대회장 근처 경찰서 3곳의 경찰 공무원 모두에게 연가를 중지 시키고 가용력을 100% 동원해 환자 발생에 대응하고 있는 상태다.
잼버리 대회가 이처럼 운영부실 논란 속에 소방당국과 경찰 전역에 비상을 가동하게 된 것은 사전 준비 절차까지 총체적인 부실이 결국 터진 것으로 풀이된다.
잼버리는 야영을 기본으로 하는 대회인 만큼 안전사고와 환경 등이 중요한 요소다. 때문에 세계스카우트연맹은 본 대회 1년여 전 ‘프레 잼버리’라는 이름으로 ‘리허설’ 격에 해당되는 소규모의 대회를 먼저 해보고 문제를 보완하는 식으로 개최돼 왔었다.
이런 논리라면 프레 잼버리는 지난 2022년 개최되는 것이 정상이었지만 당시 한국은 코로나로 인한 거리 두기 비상 상황으로 열리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이에 조직위 측은 연맹에 ‘프레 잼버리 2023년, 본 대회 2024년’ 개최를 제안했으나 연맹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사실상 리허설 없이 본 대회가 강행된 것이다.
기본적인 배수 문제는 물론 샤워 시설과 화장실 등에서도 문제가 돼 샤워 시설은 옆에서 다 보이는 상황이며 화장실은 남녀 공용 및 청소 불량 등 위생 문제가 그대로 노출되면서 대회장에 보낸 자녀들을 통해 소식을 들은 학부모들이 성토하고 있는 형국이다.
잼버리가 1인 당 900달러(한화 117만 원, 한국 청소년들의 경우 참가비의 65~75% 선이 교육 당국 및 지자체 등에서 보조함)의 참가 비를 받았다고 하면 잼버리 대회에 참가 비용만 500억 원 내외가 모였고 여기에 정부 등 보조금까지 감안하면 이런 수준의 준비는 한참 미흡했다는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러나 아무리 사전 리허설 대회를 열지 못했다고 해도 한국의 8월이 폭염 기간인 것을 모를 리가 없는 상황에서 나타난 준비 부족 등은 ‘리허설 부재의 핑계를 대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준비가 미흡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현장에 참석한 참가 청소년과 학부모들의 전언으로는 최소한의 물과 전기 등 공급조차 원활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면서 잼버리 대회는 적잖은 비용을 부담한 참가자들이 사실상 ‘고통을 돈으로 산 격’이 되고 말았다는 평이 중론화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언론들이 연일 준비 부족에 대한 비판을 가하자 조직위가 언론에 ‘보복성’으로 의심될 만한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3일 조직위가 당초 언론에 허용했던 취재 장소 ‘델타구역(자율적으로 취재할 수 있는 공간)’을 통제하고 운영 요원의 동행 하에만 취재를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조직위가 당초 개막 브리핑을 통해 델타 구역에서의 취재를 막지 않는다고 말한 것과 정면 충돌하는 것인 동시에 비판하는 언론의 입을 막으려 하는 것으로 이해될 소지가 크다.
조직위는 청소년 참가자들이 델타 구역에 있는 만큼 성인인 기자와 청소년인 참가자 간 1대 1 취재는 부적절하다는 판단으로 한 조치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3일 현재 “현장 중상자가 2명”이라고 발표한 소방당국과 “중상자는 없다”고 주장하는 조직위 측 내용이 상반되는 등의 정황을 감안하면 조직위 측이 언론에 무언가를 숨기려 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는 내용이다.
실제로 조직위 측의 통제와는 관계없이 참가자들은 자신들의 부모 및 지인 혹은 본인들이 아는 매체 및 SNS 등의 경로들을 통해 문제를 지적하고 있는 상태다. 그야말로 ‘국제적 망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볼 수 있는 부분.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는 타 매체 동료 기자는 “지금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언론의 입을 강제로 막으려 한다고 막아지는 게 아니지 않나, 조직위가 ‘준비 부족’만 있을 줄 알았는데 ‘어리석음’까지 동반하고 있는 것 같다”며 혀를 끌끌 차기도 했다.
결국 정치권에서도 문제가 지적됐다. 정당 가운데서는 정의당이 개막 전부터 폭염과 배수 등 문제로 일정 수정 등을 요청했던 바 있었으나 받아 들여지지 않았는데 이처럼 문제가 속출하자 비판의 목소리가 공식적으로 나오고 있는 형국이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심상정 의원(경기고양갑, 정)은 “(지금 잼버리 현장은) 땡볕을 피할 곳이 하나도 없고 배수와 해충 방제 등에 모두 역부족으로 전 세계의 참가 청소년들에 대한 가혹 행위”라고 규정하고 “잼버리 대회의 즉각적인 행사 중단을 검토하라”고 촉구했다.
심 의원은 “뒤늦게 이상민 행안부장관이 온열질환자 대책을 마련하라고 ‘긴급’ 지시했다다는데 이는 긴급이 아니라 뒷북지시”라며 “사전 예방을 손 놓고 있다가 긴급 지시로 땜질하는 사단이 윤석열 정부 들어서 벌써 몇 번째냐”며 “현 정부가 ‘안전 불감증 정부’라는 걸 국제적으로 인증이라도 받고 싶은 모양”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