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수 기자
(뉴스통신=배영수 기자) 90년대 도시계획 실패로 인천 연수지역 내 대표적인 슬럼가였다가 현재는 고려인 마을로 분위기가 변모하고 있는 연수1동 함박마을에 대한 관할구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이러한 고민은 동네의 특징이 변모하는 과정에서 당연히 따라오는 것인 만큼 연수구는 주민 간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종합대책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인데 ‘중립적인 시각에서의 상생대책’을 과연 마련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11일 연수구에 따르면 함박마을은 2015년부터 외국인 주민 수가 증가해 현재 전체 주민 1만 2천여 명 중 61%(약 7,400명)가 외국 국적자다. 연수구는 이중 80% 선을 고려인으로 추정하고 있는 상태다.
고려인들이 중앙아시아에서 거주하며 뿌리를 내린 것은 저 멀리 조선왕조 후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800년대의 조선왕조 전반이 민초들에게 가혹한 수탈을 했던 바는 이미 역사적으로 증명돼 있다.
이들 민초들 중 일부가 수탈을 견디다 못해 극동러시아로 건너가 살다가 이후 근현대사가 흘러가는 과정에서 러 연방과 독립국가연합 등으로 흩어진 과거들이 있다.
현재 함박마을에 유입되고 있는 고려인들은 당시 극동러시아 등으로 건너간 조상들의 후손으로 보면 된다. 다시 한국으로 유입돼 인천으로 온 고려인들이 함박마을에 정착한 이유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집값과 자신들이 노동을 하는 현장과의 교통편 때문이다.
인천시에서 관련 업무를 했던 바 있는 한 공직자는 “고려인들 중 상당수는 남동공단에서 일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인근에서 집값이 싸면서도 버스로 환승 없이 바로 갈 수 있는 곳이 바로 함박마을”이라며 “고려인들이 이곳과 현지 국가 등을 기반으로 만든 커뮤니티(주로 온라인 비공개 SNS으로 추정)를 통해 그들끼리 정보를 교환하고 유입하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
실제로 함박마을에는 남동국가산업단지와 인접하고 저렴한 집세와 공항 접근성 등 유입 원인을 충족했다는 고려인들의 평가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이주민 대부분은 저임금 노동자와 취업 불가자(F1) 등 저소득층인데 집단거주 성향이 두드러지는 특징을 보인다는 것이 연수구 측 설명이다. 구 관계자는 “현재 면적 대비 고려인 밀집도는 이곳이 전국 최대 수준”이라고 밝혔다.
이곳에서 최소 8년여 이상 장사를 했다는 상인들의 전언에 따르면 자신들의 체감에도 고려인들이 급격히 유입됐다고 느낀 시점이 2015~2016년 경이었는데 그 뒤로는 수가 빠르게 증가한 것을 장사하면서도 느낄 수 있을 정도였으며 식당 등은 한글 외에도 키릴문자로 된 메뉴판을 따로 마련해 운영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기자가 최근 취재를 위해 이곳을 방문했을 때도 핸드폰 매장이나 치킨가게 등은 전부 키릴문자로 된 메뉴판 및 공지가 안내돼 있거나 러시아어가 가능한 직원이 배치돼 있기도 했고 카페에는 손님의 상당수가 러시아어를 쓰는 현상도 있었다.
최근 아시안 푸드를 경험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는 한 방송국 PD는 “물론 거리에 나와보면 체감은 좀 덜한데 키릴 문자가 안내돼 있는 식당만 들어가도 중앙아시아 국가에 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며 “동네가 색다르게 바뀐다고 할 수 있는 부분인데 이걸 ‘동네 특징화’를 시킬 수 있도록 어느 정도 도와주면 괜찮기도 할 것 같다”고 의견을 말했다.
다만 고려인들이 빠르게 유입되고 있으나 선주민들과의 정서적 문화적 차이 등으로 발생되는 갈등은 관할 지자체인 연수구로서는 충분히 고민해야 할 문제로 보인다.
전체 40% 선인 외국인 음식점이 해당 지역을 점유하는 과정에서 선주민 중 음식점 등의 업종에 종사하던 자영업자들은 자연스레 불만 빈도가 높아졌다거나 이곳 인근 2개 초등학교(문남초교, 함박초교) 이중 언어수업을 하면서 생기는 부작용들이 있다는 것이다.
학생의 절반 이상이 외국인으로 러시아어 생활권 형성이 됨에 따라 한국인 아동의 학부모들이 “자녀들의 학습 진도가 지연되거나 국적이 다른 학생 간 갈등도 발생한다”는 등의 이유로 이들에 대한 곱지못한 시선이 있다는 것도 연수구의 설명이다.
그러나 이날 연수구가 배포한 관련 보도자료에는 모두 ‘선주민의 시선’에서만 본 불만의 내용들만 적시돼 있어 문제로 지적될 만하다.
보도자료에는 앞서 언급한 내용인 일선 초등학교의 이중 언어 수업으로 학습 진도 지연 및 학생 간 갈등 내용이 적시돼 있다.
여기에 “외국인음식점이 전체 40%를 차지하다 보니 선주민 운영 상권 위축으로 인한 불만과 함께 생활방식 차이·불법 주정차·쓰레기 무단투기 등으로 골머리를 앓아 왔다”는 내용도 적시돼 있다.
그러나 이에 비해 고려인들이 선주민들에게 가질 수 있는 불만의 내용은 이 보도자료 어디에도 기재돼 있지 않았다. 해당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는 연수구마저 소위 ‘기울어진 시선’을 가진 것은 아닌지 의심이 갈 만한 부분.
또 최근 일부 언론에서 이 동네에서 일어나는 갈등의 모습들을 보도했는데 이중에는 ‘고려인들이 문제’라는 시선의 기사들도 상당수 있었다. 말썽 안 부리고 열심히 살고 있는 다수의 고려인들 입장에선 여러 모로 억울할 부분이 있을 만한 지점이다. 물론 지역사회 전반은 이런 보도들을 ‘왜곡’이라고 규정하는 분위기다.
함박마을에서 15년 넘게 살아왔다고 밝힌 한 주민은 “이 동네에서 범죄가 많이 발생됐다는 내용이 경찰 통계로도 있기 때문에 그건 부정할 수 없겠지만 대부분의 잘 알려진 중범죄들은 오히려 한국인에게서 더 많이 나왔고 실제 범죄 빈도도 한국인의 발생 비율이 더 높다는 통계가 이미 있는 걸로 안다”고 성토했다.
다른 주민은 “고려인들이 본격적으로 유입되기 전엔 이 동네가 그야말로 ‘슬럼가’ 그 자체였다”며 “이들이 유입되면서 도시재생 같은 사업이나 동네축제 등이 진행되고 프랜차이즈가 들어오기도 하는 등 2015년 이후 동네 분위기는 더 나아졌다고 보는 게 맞다”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 연수구 관계자 역시 기자와의 통화 중 “함박마을 일대의 범죄 빈도는 한국인에 의한 것이 더 많다는 내용을 과거에 본 바가 있다”는 코멘트를 전하기도 했는데 실제 연수경찰서 범죄 통계에 따르면 지난 1년(2022년 6월~2023년 5월) 함박마을에서 발생한 298건의 범죄 가운데 외국인이 저지른 범죄는 14건으로 4.6%에 불과했다 “고려인이 늘어 범죄가 늘었다”는 선주민들 주장이 무색한 셈이다.
이에 기자가 연수구 관계자에게 보도자료 내용에 대해 지적하자 연수구 관계자는 “행정적으로는 중립을 지키고 있다”고 답했으나 “그렇다 해도 중립의 시각으로 작성되어야 할 보도자료가 이런 내용으로 나갔다면 문제”라고 계속 지적하자 마지못해 인정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아무튼 연수구는 소통·협력, 치안, 상권, 교육, 주차 및 폐기물, 정주지원 등 6개 분야로 나눠 부서별로 문제점을 도출하고 주도적으로 해결하겠다고 발표했다.
다만 그간 연수구가 추진해온 정주지원 사업들(한국어교육·문화교육, 다문화가정지원, 도시재생)이 있었으나 기초지자체만의 힘으로는 한계가 있어 중앙정부 차원에서 도움이 필요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연수구 관계자는 “사실 고려인 마을이 제일 크게 정착된 곳이 인근 안산시인데 이곳을 벤치마킹하면서 종합대책을 마련코자 한다”고 밝혔다.
또 학생들의 수업진도문제 등의 해결을 위해서는 “교육부에 ‘외국인 학생 취학 전 한국어교육 등 의무 이수제’ 운영을 과거 건의했고 인천시 국제관계대사를 통해 고려인 동포에 대한 재외동포청 차원의 교육과 함께 법무부 등 중앙부처에 제도 개선 건의를 요청한 상태”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