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수 기자
(뉴스통신=배영수 기자) 해외에 거주하는 730만 명의 재외동포 교류 협력과 차세대 동포교육, 영사·법무·병무·교육 등의 서비스 제공을 위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재외동포청 유치전에 인천과 서울이 각축전을 펼치는 분위기다.
다만 이를 최종 결정할 정부가 최대한 자세를 숨기는 분위기인 만큼 다른 지방에 유치될 가능성도 현재로선 완전 배제하기는 어렵다.
10일 인천시는 각 언론사에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하와이의 공식 교민단체에 이어 ‘미주한인소상공인총연합회’도 재외동포청의 인천 유치를 지지하고 나섰다”며 “그들의 플로리다 정기총회에서 의결된 사항”이라고 전했다.
인천시의 이날 보도자료는 최근 ‘미주현직한인회장단협의회’라는 단체가 재외동포청의 서울 유치 지지를 발표하자 이를 다분히 의식한 듯한 분위기다.
이후 유럽한인총연합회 등 재외교포단체들이 이들이 갑자기 나서 서울 지지 선언을 한 것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발표하자 인천시가 공신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되는 협의체에 의중을 물어 인천의 지지를 응답받았다 것이다.
유럽한인총연합회 등은 ‘미주현직한인회장협의회’라는 단체가 재외교포들에게는 낯선 단체로 재외교포단체로서의 공신력을 인정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이 같이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지난달 2일 신설 ‘정부조직법’ 공포안 서명 이후 재외동포청의 최종 유치 지역 발표를 두고 분위기를 보고 있는 상태다.
지역사회 전반은 “발표가 왜 이리 늦느냐”는 의문이 있지만 사실 행정적으로는 앞으로 두 달여 후에 발표한다 해도 문제는 없다. 다만 지역 간 갈등 등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빨리 결정하는 것이 좋기는 하다.
현재 재외동포청 유치전은 인천이 가장 활발하며 그 외 광주광역시, 충남 천안, 제주시 등이 유치전을 벌이고 있다. 물론 서울 역시 후보군이다. 명실공히 ‘수도’인 만큼 재외동포단체 일부는 서울 지지를 원하는 경우도 있다.
재외동포들이 지구촌 곳곳에 거주하고 있는 만큼 관련 단체들도 6개 대륙에 모두 소재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미주와 유럽 등지의 재외동포단체들이 힘을 모으는 빈도가 큰 상황이다.
이중 인천 유치를 희망하는 주요 재외동포단체들을 꼽으라면 이미 지난해 11월 일찌감치 인천 유치를 희망해 왔다는 유럽한인총연합회(25개국 동포단체 모임)을 비롯해 13개의 하와이 재미교포단체와 미주한인총연합회, 호주 소재 교포단체 등이다.
그 외 우즈베키스탄 및 카자흐스탄의 동포들도 수 년 전부터 인천 함박마을 등에 수천 명 단위의 고려인들이 정착했다는 점을 들어 인천 유치를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천시 역시 “전국 지자체들 가운데 우리 시가 해외동포단체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라며 “시의 모든 행정력을 동원해 반드시 유치하도록 전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지난달 23일 외교부 산하 재외동포재단이 단독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해 70%가 서울을 지지하고 인천은 14%를 보였다는 결과를 발표하자 인천시를 비롯해 인천 유지를 지지해온 재외동포단체들이 즉각 반박의 성명을 내는 등 갈등이 격화되고 있는 분위기다.
재외동포재단의 해당 여론조사는 한인회, 한상단체, 한글학교 등 재외동포단체장 2,467명을 대상으로 한 기명 여론조사를 했다는 것이 재외동포재단 측 설명이다.
이에 인천시는 “해당 여론조사는 명확한 기준도 잡지 않은 채 전체 재외동포 732만 명의 0.03％밖에 안되는 수를 대상으로 짧은 기간 특정 매체만을 활용했다는 점에서 대표성과 공신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성명을 냈다.
또 유럽한인총연합회 역시 “재외동포청을 유치하려는 각 도시의 제안 및 정책에 대한 안내도 없이 단체별로 설문 결과를 모아 대표자가 숫자를 단순 보고하는 등 설문조사의 기본요건도 안 된 조사”라며 입장을 정부에 전달해 달라는 뜻을 최근 인천시에 보내왔다.
또 앞서 언급한 ‘미주현직한인회장단협의회’라는 단체가 재외동포청의 서울 유치를 지지한다고 밝히자 유럽한인총연합회는 “미주에는 외교부와 재외동포재단에서 인정하는 미주한인회총연합회라는 공식 대표단체가 있다, 낯선 단체의 지지는 석연찮은 부분이 있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물론 아프리카 및 중동 지역 등의 한인연합회들이 서울 유치를 지지하는 경우는 있다. 하지만 인천시 등은 미주와 유럽의 공식적인 한인교포단체들이 인천 유치를 모두 희망하고 있는 만큼 그들의 요구사항이 유치에 적극 반영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갈등의 발단이 된 재외동포재단의 독단적 여론조사 이후 유럽한인총연합회는 지난 5일부터 유럽 27개국에 거주하는 동포 중 347명을 대상으로 자체 여론조사를 벌여 63%가 인천을 지지하고 20%가 서울을 지지한다는 결과를 내기도 했다.
외교부 산하기관이 ‘공신력도 없는 수준’으로 졸속적인 여론조사를 성급히 발표한 결과 공식적인 재외동포단체들에게 반발을 자초하는 다소 어이없는 상황이 만들어진 셈. 물론 이는 외교부의 책임일 수밖에 없다.
유럽한인총연합회 측은 “재외동포청을 원하는 도시의 제안과 타당성을 냉정하고 꼼꼼히 살펴본 결과”라고 강조했다. 인천이 타 도시들에 비해 더 나은 비전과 타당성을 제시하고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인천의 지역사회 내에서는 인천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인천경실련)이 재외동포청의 인천 유치를 지지하며 인천시에 가장 힘을 실어주는 모습이다.
인천경실련 측은 “2007년 재외동포청 설치 요구가 있을 당시 외교부가 중국 및 러시아와의 ‘외교 마찰’을 우려해 강하게 반대한 과거가 있는 만큼 외교부 산하기관인 재외동포재단의 여론조사는 이해당사자인 외교부와 재외동포재단이 소재지를 예단하고 있는 것”이라며 강한 비판을 가했다.
인천의 다른 지역사회 전반도 대체적으로는 인천 유치를 지지하는 모습이다. 인천 지하도상가를 비롯해 인천지역의 곳곳에는 재외동포청의 유치를 희망하는 현수막이나 홍보물 등을 비교적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물론 각 정당의 인천시당 등 정치권도 예외는 아니다.
지역사회 전반의 의견은 현재 송도 등 인천의 경제자유구역이 교포들이 고국으로 돌아와 지내기에 가장 좋은 인프라가 갖춰져 있는 만큼 재외동포청 역시 인천 유치가 가장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이미 조성이 돼 있는 송도아메리칸타운이나 현재 추진되고 있는 유럽한인문화타운 등을 비롯해 채드윅국제학교와 달튼외국인학교, 해외 대학들의 글로벌캠퍼스 등 교육 인프라도 대부분 갖춰져 있다는 논리다.
역사적으로도 한국인의 공식 이민이 1902년 인천 제물포에서 시작됐다는 점을 들어 그들이 떠났던 곳에서 다시 돌아온다는 의미를 부여함이 마땅하다는 것이 인천시 및 지역사회의 주장이다.
다만 지역사회 내에서는 우려하는 분위기도 적지 않다. 어떻게든 정부가 최종 결정을 할 텐데 이 같은 유치전을 두고 대륙별로 퍼져 있는 재외동포들이 서로 갈등을 반복하는 관계로 비화될까 우려된다는 것이다.
특히 재외동포청이 그 역할 외에도 전 세계 재외동포들의 화합을 목표로 한다는 점을 상기하면 설치도 되기 전에 화합을 목표로 하는 기관이 갈등의 씨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재외동포단체들이 전하는 여러 이야기들을 듣고 있다는 연수구 주민 윤모씨(45, 미국서 약 10년 정도 거주)는 “물론 그런 기관들이 인천에 배치된다면 인천시민으로 반가운 일이겠으나 재외동포청의 의미를 생각했을 때 동포들이 자칫 그들끼리 갈등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마음이 들기는 한다, 그런 마음은 아니길 바란다”고 우려했다.
